[삼국사기]삼국사기 논찬
- 최초 등록일
- 2006.06.24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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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사기에 있는 논찬부분중 5개를 선택하여 그 내용을 설명하고 자신의 생각을 적은 내용이다.
목차
1. 삼국사기 권 제3 신라본기 나물이사금
2. 삼국사기 권 제5 신라본기 선덕왕16년
3. 삼국사기 권 제16 고구려본기 고국천왕13년
4. 삼국사기 권 제26 백제본기 동성왕22년
5. 삼국사기 권 제44 열전 을지문덕
본문내용
1. 삼국사기 권 제3 신라본기 나물이사금
奈勿一云那密尼師今立 姓金 仇道葛文王之孫也 父末仇角干 母金氏休禮夫人 妃金氏 味鄒王女 訖解薨 無子 奈勿繼之 末仇味 鄒尼師今 兄弟也
論曰 取妻不取同姓 以厚別也 是故 魯公之取於吳 晋侯之有四姬 陳司敗 鄭子産深譏之 若新羅 則不止取同姓而已 兄弟子 姑姨從?妹 皆聘爲妻 雖外國各異俗 責之以中國之禮 則大悖矣 若匈奴之烝母報子 則又甚於此矣
나물 이사금(奈勿尼師今)<[나물(奈勿)을] 또는 나밀(那密)이라고도 하였다.>이 왕위에 올랐다. 성은 김씨로, 구도(仇道) 갈문왕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말구(末仇) 각간이다. 어머니는 김씨 휴례부인(休禮夫人)이고 왕비는 김씨로 미추왕의 딸이다. 흘해왕(訖解王)이 죽고 아들이 없었으므로 나물이 왕위를 이었다.<말구와 미추 이사금은 형제이다.>
사론(史論): 아내를 맞이함에 있어 같은 성씨를 취하지 않는 것은 분별을 두터이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노공(魯公)이 오(吳)나라에 장가들고 진후(晉侯)가 사희(四姬)를 취한 것을 진(陳)나라의 사패(司敗)와 정(鄭)나라의 자산(子産)이 그것을 매우 나무랬다. 신라의 경우에는 같은 성씨를 아내로 맞이할 뿐만 아니라 형제의 자식과 고종·이종 자매까지도 모두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다. 비록 외국은 각기 그 습속이 다르다고 하나 중국의 예속(禮俗)으로 따진다면 도리에 크게 어긋났다고 하겠다. 흉노(匈奴)에서 그 어머니와 아들이 상간(相姦)하는 경우는 이보다 더욱 심하다.
⇒ 이것은 신라 17대 나물이사금의 동성녀를 취한 것을 비판하고 있는 글이다. 당시 고대 국가에서는 왕족이나 귀족 집단에서 근친혼이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자신의 종족의 번성과 자신과 다른 종족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하여 근친혼을 행한다. 신라는 근친혼을 통해 지배세력으로서의 지위를 지켜나간 사회였고 뒤를 이은 고려도 고려 시대의 혼인은 신라의 계급 내 혼제를 답습하였으며, 동성혼 내지 근친혼이 성행하였다. 고려 왕실에서의 동성혼, 근친혼은 물론 양반 계급에서도 널리 행해져서 재종자매(再從姉妹), 질녀(姪女), 이성자매(異性姉妹)의 혼인까지 행하였다.
그러나 점차 유교 예속의 영향으로 이 동성혼에 대한 논란이 생기게 되고 이를 금지하는 법령이 내려졌다. 이렇게 되어서 조선 시대에 들어오면서 근친혼의 관습은 없어지고 유교의 영향으로 동성동본 결혼금지라는 것이 내려온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