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중국사 인물조사]조조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5.12.07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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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번에 중국사레포트 중국사 인물조사가 있어서 조조에 대해서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조조, 위진남북조사, 중국의역사5권 여기서 자료 발췌했음을 알려드립니다
가급적 한문사용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목차
1.조조의 생애에 따른 업적과 인물평가
2.조조의 정책
3.조조에 대해 정리
본문내용
≪삼국지(三國志)≫ 권1 <위지(魏志)> <무제기(武帝紀)>에 조조는 자(字)가 맹덕(孟德)이고 패국(沛國) 초(譙)지역 사람으로, 전한(前漢)의 승상(丞相) 조참(曹參)의 후손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후한서(後漢書)≫ 권108 조조의 조부 <조등전(曹騰傳)>에는 조참의 후예라는 기록은 없다. 조조의 조참 후예설은 위(魏)의 선양(禪讓)을 윤색하고 조씨 가문을 격상시키기 위해서 조작된 것 같다. 조조의 조상 가운데 후한(後漢)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길 만한 인물은 사서(史書)에서 찾아볼 수 없고, 확실한 유력 인물은 그의 양조부(養祖父)인 조등(曹騰)뿐이다. 조등은 패국의 초지역 사람으로 어떤 배경에서 또 무슨 까닭에 환자(桓者)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후한 중기 안제(安帝) 때, 환관으로 입궁하여 환제(桓帝)영입에 공이 있어 후봉(侯封)을 받고 이후 대장추(大長秋) 등 궁중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재임 때는 해내(海內)의 명사들을 관직에 천거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조등의 양자 숭(嵩)은 환관에게 뇌물을 바치고 서원전(西園錢) 1억 전을 바쳐 매관(賣官)하여 대사농(大司農) 태위(太尉)까지 승진하였다. 숭이 곧 조조의 부친이다. 이와 같이 조조의 가계(家系)는 특별한 가문의 배경도 없고 고위 벼슬아치와 연결된 위치에도 있지 않은 조조의 조상은 관계(官界)에서 소외된 보잘것없는 가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는 ‘형여지인(刑餘之人)’이라는 환관에게 입양된 뒤 비로소 관도(官途)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벼슬에 오르기 위해 환관의 양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여기 뒷날 조조의 관료지향적인 요소가 잉태했다고 볼 수도 있다.
참고 자료
위진남북조사[지식산업사]
人間조조-조조의 삶과 문학편 [바다출판사]
중국의 역사 5권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