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반정-그 비하인드 스토리
- 최초 등록일
- 2005.09.12
- 최종 저작일
- 2005.06
- 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선조는 정비에게서는 소생이 없이 후궁인 공빈 김씨에게서 임해군과 광해군을 두는등 13형제를 두었다. 선조는 나이가 들면서 후계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장자인 임해군은 무지하고 난폭하였기 때문에 그를 후계자로 선택하는 데 무척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선조는 임해군을 제치고 영민한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였다. 광해군은 조정의 많은 실력자들로부터 검증을 받은 뛰어난 인물이었고 나름대로 전란을 이겨내는 혁혁한 역량을 발휘하여 왕위에 오를 만한 그릇으로 이미 평가를 받고 있었다. 선조가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한 표면적인 이유는 광해군이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한다는 것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전란을 이겨낼 왕실의 가장 두드러진 후계자감이라는 이유가 컸다. 인조반정을 일으킨 서인들도 자신들이 기록한 『선조수정실록』에 광해군의 비범한 능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상의 장자인 임해군 이진은 성질이 거칠고 게을러 학문을 힘쓰지 않고 종들이 제마음대로 하도록 놔두어 폐단을 더욱 심하게 일으켰다. 그러나 광해군은 행동을 조심하고 학문을 부지런히 하여 중외 백성들의 마음이 복속하였으므로 상이 가려서 세웠다.”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명나라의 고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계비 인목왕후가 1606년 영창대군을 낳는다. 선조는 적자로 하여금 왕위를 계승하게 하려는 속내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갈등의 불씨만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영창대군이 너무 어렸으므로 인목대비는 언문교지를 내려 당시 34살이던 광해군을 즉위시켰다.
이렇게 어렵사리 왕위에 오른 광해군을 조선사에서는 폭군으로 기록하고 있다. 폭군이란 군왕으로서의 덕을 갖추지 못한 채 선왕의 법도를 무시하고 규범을 벗어나 살육과 황음을 일삼았던 군주를 일컫는다. 특히 인조반정을 주도하여 광해군을 임금의 자리에서 쫒아낸 세력의 명분은 광해군이 계모 인목대비를 유폐시켰으며, 또한 명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고 대명대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인조반정의 세력들은 그가 인목대비를 유폐시킨 건 인륜을 저버린 행위이고 명을 배신하려 한 건 나라의 존망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라는 명분을 들어 광해군을 실각시킨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