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 가야의 발전(정치와 군사제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05.08.10
- 최종 저작일
- 2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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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편 가야사의 일부를 요약한 글
목차
없음
본문내용
가야 제국의 정치신분제도에 관한 내용을 전하는 사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가락국기에 가락국 즉 금관가야 초기 정치제도를 일단 고찰해 볼 수 있다. 가락국기의 기사를 보면 가락국의 구간은 신라의 6촌장과 같은 씨족장으로 이해되어 왔다. 가락국 사료에 나타난 구간의 명칭 변개는 이들 아홉 씨족 집단이 수로왕을 중심으로 국가를 형성하면서 나타난 일정한 정치적 변혁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리고 위 구간의 명칭을 단순히 9씨족장의 명칭이라기보다는 금관국의 국가 발전에 따른 '간'계급 내에서의 일정한 관위질서의 형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구간의 명칭은 상위의 도간(刀干)류와 하위의 천간(天干)류로 대별될 수 있는데 명칭변경과정에서 2계층의 관위질서가 3계층 혹은 4계층으로 분화, 발전되어 갔다. 어쨌든 구간의 존재는 금관국이 일찍부터 독자적인 정치조직을 마련하였을 가능성을 시사해주는 것이며 더욱이 이러한 구간 명칭의 변개는 금관국의 정치제도의 정비․발전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금관국 구형왕 구의 관직과 입항에 즈음해서 구형왕이 신라에 파견한 사자 동기탈지이질금의 관직이 신라의 그것과 다른 점과 김구해의 항복 후 아들 무력이 각간이 되었다는 기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가락국기에 나타난 금관국의 신분제도는 신라에 병합되었던 532년 이후에 신라의 신분제도 안에 편제되면서 그 이전의 제도까지도 소급하여 개작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병합될 당시의 금관국의 지배층은 이미 신라의 신분제도에 편입될 수 있을 정도의 계층분화를 이루고 있었을 것이
참고 자료
신편가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