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 현대시 ] 한용운
- 최초 등록일
- 2005.06.19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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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한용운은 누구인가
2.한용운 문학에 대한 시상
3. 작품세계
1) 한용 운의 님의 침묵
2) 알수없어요
본문내용
본관 청주(淸州). 호 만해(萬海·卍海). 속명 유천(裕天). 자 정옥(貞玉). 계명 봉완(奉玩). 만해 한용운은 어두운 시대인 1879년 8월 29일에 충남 홍성군 성곡면 결성리 마을에서 한응준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어려서 유천(裕天) 이라고 불린 소년은 작은 키에 힘이 세었으며, 누구보다 머리가 뛰어났다. 모험심이 강하여 생각하는 바에 물러섬이 없었다. 그래서 서당 시절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으로 탄복의 대상이 되었지만 싸우게 되는 경우라 하여도 끝까지 싸워 승부를 내고야 말았다.유교 가정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을 보낸 한용운은 부친으로부터 뜻 깊은 교훈의 말을 들으면서 자랐다. 기회 있을 때마나 부친은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몸을 바친 의인. 지사의 행적에 대한 이야기를 아들에게 들여 주고는 했다. 또한 세상 형편이며 나랏일 등에 관하여 알아듣도록 타이르기를 잊지 않았다.일찍이 의병 활동에 관여했다가 집안이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20세기 전후해서 그는 고향을 떠났다. 나라 형편이 날로 참담해진다는 소식에 시골구석에 처박혀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중이 되었다. 인생 문제의 해결이 너무도 시급함에 강원도 백담사에 가서 불도를 닦으며 더욱 큰 뜻을 품기 시작했다. 두어 차례 연해주. 북만주 일대에 나갔다가 목숨을 건져 귀국한 그는 계속 도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30세에 가까이 되어 일본 시찰을 하고 돌아온 그는 『조선 불교 유신론』이라는 문제의 책을 써서 불교 근대화의 횃불을 들게 되었고, 항일 민족 운동에 투신하는 준비를 하게 되었다.오랜 산사생활을 통하여 참선과 독서의 값진 편력을 거친 만해는 믿음의 돌부처가 됨과 아울러 민족 해방의 절실한 염원을 마음에 새겼다
참고 자료
최규현, 『한용운 시의 연구』, 서남대 교육대학원, 2001
김광원, 『만해 한용운 시 연구』, 원광대 대학원, 1996
강예자, 『만해 한용운 시 연구 : 시에 나타난 역설적 표현을 중심으로』, 경원대 교육대학원, 1994
최성은, 『만해 한용운 시 연구, 전남대 교육대학원,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