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 최초 등록일
- 2005.06.17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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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부정선거와 시위 그리고 잇따른 영향
이승만정권의 부정과 부패는 1960년 3월 15일의 선거에서 절정에 달하였다. 그들은 이승만 사후 정권유지를 위해 이승만과 함께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려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40% 사전투표’와 4인조 ․ 5인조 투표, 개표 조작 등을 통해 노골적인 부정선거를 감행하였다.
그러나 투표당일부터 경남 마산에서 시작된 부정선거 규탄 데모는 4월 11일 최류탄에 맞아 죽은 김주열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다시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4월 18일에는 시위를 하던 고려대생들이 정치 폭력배들에게 습격․폭행당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19일에는 서울 시내 10여개 대학생들이 대규모의 시위행동에 돌입하였다. 4월 22일에는 재야인사들의 이승만 퇴진요구와 25일 대학교수단의 시위로 확대되자 이승만은 이기붕의 사퇴, 3 ․ 15선거 무효 등의 수습책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민중들의 불만을 무마할 수 없어 결국 26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망명해야했다. 이로써 이승만 정권은 무너지고 허정의 과도 정부를 거쳐 그해 7월 29일 총선거를 통해 장면을 국무총리로 한 민주당 정권이 출범하였다.
이승만은 이처럼 분단정부를 세워 독재와 부패의 정치를 행하는 한편 외세의존적인 많은 실정을 거듭하기도 하였다. 예컨대 모든 한국재산에 대한 미국측 요구가 있을 경우 이에 응해야 한다는 한미 경제 협정체결, 6 ․ 25확전이 이루어지자 그 해 7월 즉각적으로 군사작전권을 미국에 양도해버린 주권 상실적 조치, 군사작전권 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대미예속을 구조화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등이 그것이다.
참고 자료
<주제별로 본 한국역사> 전수병, 김갑동 지음 서경문화사
<시민을 위한 한국역사> 노태론, 노명호, 한영우, 권대익, 서중석 지음 창작과 비평사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1권> 강준만 지음 인물과 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