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러일전쟁
- 최초 등록일
- 2005.05.17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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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쟁사 수업을 들으며 작성한 것이므로
관점이 일반 러일전쟁과 다릅니다.
목차
Ⅰ. 개 관
Ⅱ. 러일전쟁(1905)
Ⅲ. 결론 및 참고자료
본문내용
Ⅱ. 러일전쟁(1905)
1)육전
①요양/사하 전투
○대련을 공격하기로 마음먹은 일본군을 막기 위해 러시아는 남산을 기점으로 각면보와 포대, 엄개산병호 등을 설치하고 일본군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본군은 여기 남산에서 4400명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전상자가 발생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엄폐되어 호 속에 고정 되어있는 기관총이었다. 특히나 일본군은 지난 번 청일전쟁에서 여순 요새에서 너무나도 손쉽게 승리한 나머지 요새전투를 너무 경시하게 되는 일이 생긴 것이다. 물론 이 남산전투에서 이런 것과 기존에 만들어져 안 맞는 교리를 수정했으면 여순 요새 공방전에서 큰 피해는 입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4400명의 피해를 입고서도 일본군은 기존의 전술을 바꾸지 않다가 여순 요새 공방전에서 극심한 피해를 입게 된다. 이렇게 많은 피해를 입고 승리를 거둔 일본군은 만주작전의 원활을 위해서 1904년 06월23일 만주사령부를 설치했다.
○일본 제2군은 요양에서 결전을 치루게 되었는데, 이 때 속전속결이 가능하리라 보고 개전결정을 내렸다고 전술했듯이 전쟁이 차차 지연 되어가자 인원의 충원보다 물자의 충원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군수물자를 아끼고 인원은 쓴다.”는 용병사상이 태동하게 된 것이다. 이 요양전투에서도 일본은 힘겹게 승리를 거두었다. 러시아는 요양전투에서 패배 한 후, 10월 초순 반격을 개시하였으나, 미리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었던 일본군에 의해 조우전을 시작으로 격전을 치르다가 10얼16일 양군은 사하를 씨고 대치되는 국면을 가지게 되었다.
②여순 전투(1904.08~1905.01)
○1898년에 청국에서 여순과 대련을 조차한 러시아는 여순을 Port Arthur라 명명하고 요새화 된 군항으로 개발을 했다. 앞서 청일전쟁에서 살핀 대로 여순 요새는 막강한 요새였다. 여순의 요새와 항구를 빼앗지 못하면 추후 있을 해전에서 일본함대가 불리해지고 해상을 통한 육군의 보급품 수송이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일본육군은 일본해군작전에 용이함을 주기 위해서, 자신들의 보급품 수송의 용이를 위해서 여순을 꼭 점령해야 했던 것이다. 반대로 러시아도 이 여순 요새를 사수해야만 도착하는 발트함대와 여순 함대의 합류로 일본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여순 요새는 빼앗아야만 하는 자와 지켜야만 하는 자의 싸움으로 러일전쟁에서 가장 격렬한 양상을 띄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군은 3군사령관 노기 마레스케 대장은 3회에 걸친 총공격을 감행했다. 1~2회 총돌격은 실패했고 마지막 3회의 돌격에서 주공격 목표를 203고지로 바꾸어서 총 공격을 감행했다. 이 203고지 전투에서도 5000이 넘는 장교와 사병들이 희생됨으로 203고지를 점령했다.
참고 자료
-육사전사학과,『세계전쟁사』
-온창일,『한민족전쟁사』
-가토요코 저, 박영준 역,『근대일본의 전쟁논리』
-최문형,『러일전쟁과 일본의 한국병합』
-로스뚜노프 외 전사연구소, 김종헌 역,『러일전쟁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편저,『러일전쟁과 한반도』
-해군대학,『세계해전사』
-강만길,『한국근대사』
-정토웅,『20세기 결전 30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