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키아스와 크라수스의 비교
- 최초 등록일
- 2004.12.06
- 최종 저작일
- 2004.10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니키아스
니키아스의 집권
니키아스 협약
시라쿠사 전쟁과 니키아스의 최후
플루타르크가 본 니키아스
내가 본 니키아스
크라수스
마리우스와 킨나의 재집권
술라의 재집권
스파르타쿠스 반란
제1차 삼두정치
크라수스의 최후
플루타르크가 본 크라수스
내가 본 크라수스
본문내용
니키아스는 니케라투스(Nikeratus)의 아들로 페리클레스(Pericles)가 집권할 당시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었다. 때문에, 페리클레스의 동료로서 장군직에 종사했으며 혼자서 군대를 지휘한적도 있었다. 페리클레스가 죽자 클레온(Kleon)의 전단과 횡포를 막기 위한 장벽으로서 부유한 상류층들에 의해 최고의 직위에 앉게 되었다. 또한 그는 귀족 외에도 평민들의 지지도 받았는데, 클레온이 평민들의 이익을 꾀하고, 그들의 환심을 얻기에 힘썼는데도, 그의 탐욕과 교만, 횡포 때문에 평민들의 대부분이 니키아스를 지지했던 것 이다.
민중은 지용을 겸비한 인물들에 대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그들의 재능을 실컷 이용하면서도 언제나 그들의 능력을 질투하고는 끊임없이 그들의 행동을 감시한다. 그러다가 어떤 기회가 오면 그들의 기를 꺾고 그 명성을 깡그리 뭉갠다. 그들은 페리클레스를 비난했고 키몬(Kimon)을 추방했으며 파케스(Pakes)를 자살하게끔 만들었다. 니키아스는 그러한 것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정치를 할 때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 시간을 소비하지 않았고, 장군직에 있을 때는 힘들고 장기전이 될 만한 정벌을 가급적 맡지 않으려 했다. 부득이 하게 지위를 맡게 도면 여간 행동을 조심하지 않았다.
니키아스는 진지한 면모를 세심하고 공손한 태도로써 조절시켜 자기가 민중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임으로써 평민들의 인기를 얻었다. 그는 천성이 수줍고 소심한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는 행운이 그에게 용기를 불러일으켰으며 그의 결점이 드러나는 것을 막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