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인물조사-카이사르
- 최초 등록일
- 2005.12.17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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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카이사르.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독재 정치를 시도하려 한 로마의 반역자, 혹은 한계점에 다다른 로마를 개혁함으로써 로마를 더욱 번영하게 했던 로마 역사상 유일의 천재. 후세의 역사가들이나 사람들 간의 견해가 이토록 극과 극으로 상반된 인물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내가 그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바로 이 부분에서였다. 물론 뒤에서 논하겠지만 여러 자료를 통해 그의 생애와 업적을 논하고, 그에 대한 매력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 싶다. 나도 모르게 그에게 빠져든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에 대한 많은 서술과 자료는 이 계기로 한 인물에 대해 파고들어 보기로 정한 나에게는 안성맞춤의 인물이 아닌가 싶다. 개인의 전기까지도 남아있다니 말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관점을 논하기에 앞서 카이사르라는 인물에 대하여 한번 알아볼까 한다.
목차
Ⅰ. 카이사르에 대하여 논하게 된 이유
Ⅱ. 카이사르의 생애
1. 유년기
2. 청년기-권력의 중심부로
3. 장년기-독재를 확립하는 과정
Ⅲ. 카이사르의 업적
1. 정치적 업적
2. 군사적 업적
Ⅳ. 후대 사가들과 나의 평가
1. 후대 사가들의 평가
2. 카이사르에 대한 나의 평가
본문내용
현대의 역사가들 중에서는 카이사르에 의해 갈리아 인구 3분의 1이 학살당했다는 점을 내세워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는 관용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하이두이 족과 레미 족이 먼저 항복하자 그들의 재산과 안전을 보장해 주고 조공 같은 것도 전혀 받지 않았다. 친분이 있는 갈리아 유력자가 부탁해오면 어제까지 칼을 들이대고 싸우던 적들도 용서해 주곤 했다. 뿐만 아니라 내전 당시 그에게 등을 돌렸던 많은 원로원 의원들이 용서를 구해오자 그는 흔쾌히 허락하고 관직까지 맡긴 인물이다. 그러나 갈리아 인들은 카이사르가 전쟁을 위해 자리를 비우기만 하면 배신하여 로마 군대의 뒤를 쳤다.
또한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쟁 동안 적의 병력보다 많은 병력을 가지고 싸워본 일이 거의 없었다. 벨기에 족과 전투를 벌일 때는 수십만 명의 적군을 단 4만 정도의 로마군으로 격퇴해야 했다. 소수의 군대가 다수의 군대를, 그것도 적진 한가운데에서 제압하려면 가급적 전투를 줄여야 하고, 그들은 성인 남자 전체가 바로 군사력으로 변할 수 있는 종족이므로 패잔병이나 포로들을 놓아준다면 다시 로마 군대에 칼을 들이대기 때문에 카이사르 휘하의 로마군이 필요 이상으로 잔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모든 전쟁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여기서도 이러한 논리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참고 자료
로마사
카이사르 전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