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축사 - 중세불교건축
- 최초 등록일
- 2024.03.11
- 최종 저작일
-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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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불교사찰의 번성과 가람구성의 복합성 (10~12C)
1) 불교사찰의 번성
2) 가람구성의 복합성
3) 사례
2. 풍수지리설
1) 풍수지리설의 시작
2) 풍수지리설의 유행
3) 풍수지리설 개념
4) 비보사탑설과 도참사상
본문내용
불교사찰의 번성
고려시대는 불교가 왕실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계층을 초월해서 열성적으로 신봉되던 때였다. 특히 왕실과 귀족 지배계층의 불교에 대한 심취는 다른 어느 시대에 볼 수 없는 정도였다. 중앙 집권적인 왕권이 안정되고 있던 11세기는 그 절정이었다. 역대 왕들은 왕실의 기복을 위한 원찰 망자의 명복을 빌기위해 건립한 사찰.
을 계속 건립했다. 개경 시내와 교외에는 이러한 왕실 원찰들로 가득하였다.
개경 주변의 왕실 원찰은 이미 10세기 중반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다. 태조의 원당인 대봉은사를 비롯해서 불일사, 귀법사 등이 도성 외곽에 지어졌다. 11세기에 들어오면서 기존 사찰들의 대대적인 증축이 이어지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원찰들이 속속 건립되었다. 현화사, 불일사, 안화사, 국청사 등이 대표적인 사찰들이다.
많은 사찰들이 왕실이나 개인의 기복을 비는 원찰로 화함에 따라 이러한 기복을 비는 불교행사는 수십가지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 종류는 팔관회 우리 민족의 고유 민속신앙과 불교의 팔관재계(八關齋戒)가 습합된 신라와 고려시대의 국가적 행사.
나 연등회 외에도 무차대회, 인왕도량 신라와 고려시대에 국가적 행사로 개최되었던 호국법회의식.
, 나한재 불교에서 소승불교의 최고 성자인 아라한(阿羅漢)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여 구복(求福) 및 내우외환을 없애기 위해서 기원하는 의식의 하나.
등 80여 종에 달하였다. 이런 대규모 불교 법회나 행사는 간혹 궁궐에서 치르기도 하였지만 대개는 사찰 내에서 수많은 신도들이 모인 가운데 이루어졌다. 따라서 사찰에는 이런 행사를 치를 수 있는 넓은 내.외부 공간이 필요하였다.
참고 자료
한국건축의 역사 - 기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