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임진왜란(壬辰倭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 사이의 광해군(光海君)과 그에 대한 재인식
- 최초 등록일
- 2004.05.01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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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쉽게도 참고문헌이 없네여..
많은 도움이 됐음 좋겠네여...
목차
Ⅰ. 서론(序論)
Ⅱ. 본론(本論)
1. 임진왜란(壬辰倭亂)의 종결과 영향
1)조선(朝鮮)
2)일본(日本)
3)명(明)
2. 광해군(光海君)의 정치(政治)
1)광해군(光海君)의 즉위와 광해군대의 정치세력
2)광해군(光海君)의 정치운용
3. 인조반정(仁祖反正)
4. 호란의 발발
Ⅲ. 결론(結論)
본문내용
Ⅰ. 서론
우리나라는 수많은 왜침속의 역사이다. 그 중에서도 임진왜란(壬辰倭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은 조선시대(朝鮮時代) 대표적인 외침이라 할 수 있겠다. 조선 건국후 안정된 사회에서 전쟁의 위협 없이 살아가던 조선은 임진왜란이라는 큰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며 7년이라는 세월동안 전쟁 속에 보내게 되고, 사회는 피폐해지고 백성들은 살아갈 희망마저 잊어버리게 된다. 이 시기에 왕위에 오른 광해군(光海君)은 전쟁후유증 속에서 민생안정과 국가 안위를 동시에 생각하며 많은 정책들을 펼치며 탁월한 정치를 한다. 하지만 광해군은 결국 실패했고, 비극적 최후를 맞고 말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타난 그의 삶은 극적인 것이었다. 광해군의 삶을 비극으로 몰아간 17세기 초반은, 역시 격동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가 한번쯤은 반추해 볼 만한 역사적 교훈들을 무수히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임진왜란(壬辰倭亂), 광해군(光海君)의 즉위, 인조반정(仁祖反正), 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점철된 17세기 초반은 외세의 영향력과 우리 내부의 문제가 칡넝쿨처럼 얽혀 있던 시대다.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무조건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조금이나마 거기서 벗어나려고 시도할 것인가? 외세에 대한 대응을 둘러싸고 벌어진 양자의 대립은 국내 정치에 파란을 몰고 왔고 끝내는 17세기 초반을 '비극의 시대'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 비극에서 주연이나 조연으로 활약했던 인물들의 행동과 사고 하나 하나는 오늘 우리에게 '반면 교사' 가 되어 심각한 교훈을 남긴다. 바로 그 비극의 중심에 광해군이 있었다. 여기서는 임진왜란과 왜란이 남긴 영향, 그리고 광해군의 정치 인조반정 마지막으로 호란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살펴보면서 광해군에 대해 재해석 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