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사회사, 기독교의 민족 사회운동
- 최초 등록일
- 2023.05.06
- 최종 저작일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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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교회와 충군애국의 민족정신
2. 반일(反日)의 민족, 인권운동
3. 항일 사회정의운동
본문내용
1.1. 충군애국의 교회
한국교회의 충군 애국적 민족정신은 1896년에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었다. 민비시해(閔妃弑害)나 춘생문(春生門) 사건을 거치면서 기독교의 민족정신이 대담한 조직력으로 구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 나라를 지키는 것,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 나라사람들끼리 서로 형제시하는 것, 그리고 그런 것들이 다 기독교에서 나온다는 - 당시 언론의 간절한 시대적 호소였다.
1.2. 우리 겨레 평등사상
1897년에는 배재학당의 아펜젤러의 사회로 대 군주페하 탄신경축회가 8월 23일있었다. 배재학당의 교사의 기도와 한성판윤(漢城判尹) 이채연(李采淵)의 연설, 전 협판(協辦) 윤치호와 서재필의 강설이 각각 있었다. 무엇보다 이날 행사에서 기독교를 통해서 밝혀진 사실 하나에 주목해야 한다. 그 내용은 하나님 앞에서는 지천(至賤)한 사람도 황제와 동등함이 역설되고 동시에 공평한 사회질서와 영인의 교육과 남녀동등, 그리고 사회 발전의 부단한 추진이 역설 되었다.
야소교(耶蘇交)를 하야 전국인민이 층등이 없이 모든 형제같이 사랑하고 도와주어,
나라가 잘되야 올코 곳은 풍속과 법률이 성하게 하며 귀하고 부요하고
지혜있는 사람이나 약하고 천하고 무식한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서는 다 일반이라.
또한 이날 “태극기와 십자가”가 함께 계양되고 있었다.
1.3. 교회와 태극기
1898년 새문안교회 성탄축하예배 예배때에 적십자가와 대한 국기가 함께 교게(交揭)되었다.
또한 인천의; 담방리교회에서는 십자가를 세우고 회당 문상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었다.
감리교의 강화항동교회는 태극등을 달았으며, 부평의 굴재감리교회 회당에서는 십자가와 태극기를 함께 게양하고 “청송 홍예문”을 세우고 있었다. 교회는 십자가는 물론이며 반드시 국기와 함께 휘날리고 있었다. 1907년 장로교회의 경우 독로회(獨老會)
참고 자료
민경배, 한국교회의 사회사(1885-1945), (서울 :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