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3가지 보물
- 최초 등록일
- 2023.02.25
- 최종 저작일
- 20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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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진평왕의 천사옥대
2. 황룡사(皇龍寺) 장육존상
본문내용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는 황룡사(皇龍寺)에 있는 장육존상에 대해서 다음과 기록을 하였습니다.
신라 제24대 진흥왕(眞興王)이 왕위에 오른 지 14년인 계유(서기 553) 2월에 용궁(龍宮) 남쪽에 대궐을 지으려고 하였는데, 황룡이 그 땅에서 나타났기 때문에 절로 바꾸어 짓고 황룡사(皇龍寺)라 하였다. 기축년(서기 569)에 담장을 쌓아 17년 만에 완성하였다.얼마 되지 않아 바다 남쪽에서 커다란 배 한 척이 나타났는데, 하곡현(河曲縣) 사포(絲浦)[지금의 울주(蔚州) 곡포(谷浦)이다.]에 정박하였다. 이 배를 조사해 보니 이러한 내용의 공문이 있었다.“서축(西竺) 아육왕(阿育王)이 황철 57,000근과 황금 30,000푼을 모아[다른 전에서는 철이 47,000근이고 금이 1,000냥이라 했는데 잘못된 것인 듯하다. 혹은 37,000근이라고도 한다.] 석가삼존상(釋迦三尊像)을 만들려고 했지만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서 배에 실어 바다에 띄우면서 축원하기를, ‘부디 인연 있는 나라에 가서 장륙존(丈六尊)의 모습을 이루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다.”그리고 부처상 하나와 보살상 둘의 모형도 함께 실려 있었다.하곡현의 관리가 이러한 사실을 갖추어 문서로 아뢰었다. 왕은 그 현의 성 동쪽에 높고 밝은 땅을 골라 동축사(東竺寺)를 창건하고 그 세 불상을 모시게 하였다. 그리고 그 금과 쇠는 서울로 운반해 와, 대건(大建) 6년 갑오(서기 574) 3월[사중기(寺中記)에는 계사년(서기 573) 10월 17일이라고 하였다.]에 장륙존상을 주조했는데 단 한 번에 성공하였다. 그 무게는 35,007근으로 황금 10,198푼이 들어갔고, 두 보살에는 철 12,000근과 황금 10,136푼이 들어갔다.이 장륙존상을 황룡사에 모셨는데, 그 이듬해 불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발꿈치까지 이르렀으니 땅을 한 자나 적셨다. 이것은 대왕이 세상을 떠날 조짐이었다. 혹은 불상이 진평왕(眞平王) 때 이루어졌다고도 하지만 잘못된 말이다.다른 책에는 이러한 기록이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