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래의 난 전개 과정, 원인, 영향
- 최초 등록일
- 2023.02.22
- 최종 저작일
- 20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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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홍경래의 난 전개 과정, 원인, 영향"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홍경래의 난의 전개 과정
3. 홍경래의 난의 원인 ①: 평안도 지역에 대한 차별
4. 홍경래의 난의 원인 ②: 예언적 신앙의 역할
5. 홍경래의 난과 그 영향
6.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홍경래의 난은 조선시대 때 일어난 민란 중 가장 그 규모가 큰 민란에 속한다. 이러한 홍경래의 난이 발발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조정은 분토를 버리듯 평안도를 버렸다. 권문의 노비들도 평안도 출신을 보면 반드시 ‘평안도 놈’이라고 부른다. 평안도 사람이 어찌 억울하고 원통하지 않겠는가! 조정은 위급한 일을 만날 때마다 반드시 평안도의 힘에 의지하고, 과거를 치를 때마다 평안도 출신 문사의 힘을 빌렸다. 400년 동안 평안도 사람이 조정을 저버린 적이 있었는가.
홍경래의 난 당시 발표한 위 격문의 내용과도 같이 그것은 다름 아닌 평안도 지역을 향한 뿌리 깊은 차별과 멸시였다. 하지만 그것만이 홍경래의 난의 성격을 규정할 수는 없다. 본 글에서는 먼저 홍경래의 난의 전개 과정을 살펴본 뒤 평안도 차별을 포함한 홍경래의 난의 원인 두 가지를 파악하고 그 영향을 짚으며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2. 홍경래의 난의 전개 과정
1811년 음력 12월 18일 삼경에 이희저의 일대가 가산군청을 습격하여 군수 정시와 그의 아버지 정노를 죽이고, 군청을 점령하고 난을 일으켰다. 봉기는 한때 정주성을 중심으로 청천강 이북 지역을 거의 장악하였으나 5개월 만에 평정되었다.
참고 자료
권내현, 「홍경래 난 연구의 쟁점」, 『한국인물사연구회』, 2009.
고성훈 외, 『민란의 시대-조선시대의 민란과 변란들』, 가람기획, 2000.
김선주, 『조선의 변방과 반란, 1812년 홍경래 난』, 푸른역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