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후 대일 관계
- 최초 등록일
- 2022.10.25
- 최종 저작일
- 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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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진왜란 이후 대일 관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통신사 파견
2. 조ㆍ일관계의 파탄
본문내용
임진왜란 후, 조선 ↠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 : 막부 장군의 습직 축하, 1811년 이후 파견 안 함(통신사 견문기 - 당시 일본이 더 풍요로웠으나, 일본문물의 수용 주장은 없었음)
1. 통신사 파견
○ 도쿠가와 막부(도쿠가와 이에야스)
- 조선과의 관계회복에 대한 의사를 쓰시마를 통해 조선에 전달 - 조선과의 관계회복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국내에서의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자한 듯
- 쓰시마 도주는 사신을 조선에 보내어 사절 파견을 요청, 피로인도 송환할 뜻을 전함, 적극적면모를 보임 - 조선과의 국교회복ㆍ무역재개가 자신들의 사활과 연관되었기 때문
- 조선은 국가의 안전을 위해 사신파견의 필요성 [➀ 재침략의 위험을 없앰 ➁ 일본의 실정파악 ➂ 후금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 → 유정(사명대사)을 탐적사라는 이름으로 쓰시마에 파견(일본의 진심파악, 결과에 따라 화의 추진을 지시)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