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발해와일본의교류"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7세기말 한반도
2. 발해의 건국과 고구려 계승
3. 발해와 일본의 교류
4. 대외무역
본문내용
7세기말 한반도
7세기말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 고구려, 백제, 신라의 격변이 일어났다.
589년 수(隋)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무리한 대운하 건설과, 거듭된 흉년, 고구려와의 전
쟁에서 패퇴, 군사력의 약화로, 618년 멸망하게 되고 당(唐)나라가 들어선다. 이후에 신라
와 당나라가 연합하여 백제를 공격, 660년 수도 웅진이 함락되고 멸망하게 된다. 수도 웅
진이 함락된 직후, 백제의 잔존세력 흑치상지, 복신,도침 등이 부흥운동을 펼쳤으며, 왜로
망명한 잔존 세력은, 나당 연합군에 대항하기 위하여, 왜에 군대 파견 및 구원군을 요청
을 한다. 이에, 왜는 약 3만명의 군사를 파견하여 663년 지금의 군산 금강에서, 나당 연
합군에 의해 패하게 된다. 이후, 나당 연합군은 여세를 몰아 고구려를 공격하는데, 당시
고구려를 이끄는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죽음과 대막리지 승계를 두고 일어난 조정 대신들
의 내부분열로 668년 평양성이 함락되고 멸망하게 된다.
당나라는 고구려에 안동 도호부(安東都護府), 백제에 웅진 도독부(熊津都督府), 신라에 계
림 도독부(鷄林大都督府)를 설치하게 된다. 도호부(都護府), 도독부(都督府)를 설치함으로
본격적인 한반도 지배 가시화를 들어낸다.
신라는 나당 연합군으로 삼국을 통일하지만, 당나라와 영토 문제를 두고 갈등, 670년~67
년 나당 전쟁을 펼치게 된다. 675년
매소성 전투의 승리와, 676년 기벌포
에서 설인귀 부대를 격파 승리, 계림
과 웅진 도독부는 철폐되고, 평양에
있던 도호부는 요동으로 이동하게
되며, 신라는 대동강에서 원산정도
까지의 영토를 확정 짓게 된다. 일본
은 이시기, 한반도에서 적과 아군이
뒤엉키며 급격한 재편의 과정을 지
켜보며 자국의 이익을 도모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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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복,「한국의 동양사 연구자가 본 발해 국호의 연원」(서강대학교 출판부,2015)pp.406-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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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데이터베이스,“발해 일본”, (http://db.history.go.kr/) 2018.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