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발해의 대외교류 : 대일본관계를 중심으로"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장. 서론
2장. 발해와 일본의 대외관계 성립과정
3장. 발해와 일본의 교류
1. 일본의 ‘신라 침공 계획’
2. 국서 사건
3. 교류 체제의 변화
4장.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한 나라의 대외교류는 자국의 발전을 추구하는 지향 속에서, 자국 내 상황과 대외 정세가 연계 교합되는 지점을 설정하고 자국에 유리한 필요 조치를 강구하는 실천 행위다. 대외 교류는 자국과 상대국 간의 관계성을 본질로 하는 것이므로 대내적 판단만으로 전개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대외적 상황이 주도하는 것만도 아니다. 내정의 연장선이 외교로 향하고, 외교의 연장이 내정에 맞닿는 과정에서 끝없는 순환적 고리를 이루고 있다. 특히 고대의 외교는 국제질서 속에서 실리 추구는 물론이고, 국가의 존립을 위한 세력균형에서도 그 의미가 있다.
고구려는 나당(羅唐)연합군에 의하여 멸망했고, 고구려(高句麗)를 계승한 발해(渤海)는 숙원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발해는 자신들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당(唐), 신라(新羅)와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원만하지 못한 상황에서 돌궐(突厥), 일본(日本)과 같은 제3국에의 의존도를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특수한 상황이 당시 동아시아 대외교류의 성격을 보다 면밀히 말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논의에 앞서 발해와 일본에 대한 용어 정리를 먼저 하겠다. 먼저 일본에서 ‘일본(日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701년 다이호 율령 제정 후다. 여기서는 8C 이후를 주로 논하기 때문에 일본이라고 사용해도 무관할 것이다. 다음으로 발해라는 용어는 713년 당의 ‘발해군왕’ 책봉으로부터 나온다. 대조영이 동모산 일대에서 건국한 진국(震國)이 발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지는 논란이 있다. 하지만 이번 논의에서는 사료에서의 편의성을 위해 ‘발해’로 표현하겠다.
먼저 8세기 전후반 동아시아의 상황을 중심으로 발해와 일본이 상호 교류해야 했던 이유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특히 발해가 일본에 먼저 사신을 보낸 이유에 대해 논할 것이다. 그리고 이후 발해와 일본의 외교 목적과 성격 변화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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