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여순사건의 진실
- 최초 등록일
- 2003.12.20
- 최종 저작일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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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본론
1. '학살(GENOCIDE)' 그것의 진실은 무엇인가?
2. 풀리지 않는 여순사건의 진실
- 사건의 전개 일지
3. 반백년의 슬픔, “여순사건”의 누굴 위한 국가권력인가?
- 여순사건 진상규명이 갖는 의의
결론
본문내용
서론
지난 반백년의 시간이 넘도록 내 고향 여수에는 지워지지 못할 가슴 아픈 세월이 흘렀다. 1948년 10월 19일 한밤중의 총성으로 시작되었던 "제14연대의 반란사건"은 반세기가 지나도록 그 진상이 규명되지는 못한 채 우리 지역민 가슴속에 아픈 상처로만 묻혀 있었다. 이 사건은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소속 일부 군인들이 주도하여 일어난 것으로 반란군과 진압군에 의해 수많은 우리 지역의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순 반란사건"이라는 오명 아래 실질적인 피해자였던 우리 지역민들이 마치 반란사건의 주역인 것으로 오해되기도 하였다. 더구나 6.25사변을 겪고 난 후 공산주의에 대한 극도의 혐오증을 갖게 된 사회적 분위기, 군사정권의 장기 집권과 반공 이데올로기 등 경직된 사회 분위기 때문에 혹여 '오해를 받을까?' 무서웠던 지역민들은 이 사건을 입에 올리는 것 조차 두려워했고, 그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였으며, 무고하게 희생당한 이들을 애도할 수 조차 없었다.
순천 3일간, 여수 7일간의 반란군 점거로 비롯된 "14연대 반란사건"은 10월 22일 밤에 선포된 계엄령에 이어, 23일 함포사격으로부터 시작하여, 한 달간의 육해공군 합동 진압작전과 2개월여에 걸친 특별경찰의 관련자 색출 진압으로 겉은 봉합된 것 같았지만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한 지역민들의 가슴속에 나아있는 아픈 상처들은 결코 치유되거나 종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