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시대의 교육기관과 조선의 서당 비교 소스
- 최초 등록일
- 2022.05.19
- 최종 저작일
- 20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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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에도 시대의 교육기관과 조선의 서당 비교 소스"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민의 교육
2. 여자 교육
3. 향교(향학)
4. 사원의 발달
5. 서양학과 서양학교 발달
6. 무가 교육
7. 조선
본문내용
에도 시대의 특징 -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군사적 최고권력자, 쇼군이 되어 에도(도쿄)에 '막부'라고 불리는 정권을 확립.
대외적으로 기독교의 금지, 외국과의 교류를 부분적으로 제한하는 등, 폐쇄적 관리사회를 구축한 결과, 약 260년간 평화로운 시대가 이어졌음.
7-15 세 사이의 어린이들은 Neighborhoods temple schools run by Buddhist sects 에 출석했음. 읽기,쓰기,주산을 배움.
성직자, 수도승으로부터 주로 가르침을 받았으며, 사무라이, 의사, 타 직종의 전문가들도 교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함.
일반적으로 수업료는 없었고, 가능한 것으로 지불했다고 함.
학교들은 널리 퍼져있어서 도쿄의 문맹률이 약 20%정도였을 것이라고 추산합니다.
시골에는 학교는 많지 않았지만 세금 징수원에게 속지 않도록 글을 배우는 것을 동기부여받았다.
에도 시대의 교육은 주로 유교 개념과 중국 고전에 대해 이루어졌다. 학교의 종류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지역 학교였다. (Hanko) 이 시기 말까지 총 270여개에 달했으며 주로 사무라이 계급의 아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했다.
두 번째 유형은 사무라이뿐만 아니라 평민들의 자녀를 입학시키고 도덕 훈련과 읽기,쓰기, 산수를 가르치는 학교였다. (Terakoya)
보통 독신 교사나 부부들에 의해 운영되었고, 에도시대 말기에는 수만개의 학교가 존재했다. 1868년 도쿠가와 막부의 붕괴 당시 일본의 문맹률은 많은 서구 국가들보다 낮았다.
서민의 교육
에도시대의 서민은 봉건사회의 구조에 근거하여 서민으로서의 도덕이 요구되고 또 서민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교양을 씌워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에도시대의 서민교육은 일반적으로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이루어졌다. 당시에는 도제봉공이나 여중봉공 등의 봉공생활, 또 젊은이조 등의 집단생활이 널리 행해졌고, 그 중에서의 교육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