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역사] 그라쿠스형제의 개혁과 실패
- 최초 등록일
- 2003.12.07
- 최종 저작일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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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기원전 133년경 포에니 전쟁과 로마의 급속한 해외 확장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변화들은 여러 집단들 사이에 심각한 문제들과 불만을 일으켰다.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와 그의 동생 가이우스는 이런 불만 요소들을 바로잡기 위해 나섰고, 이들의 시도가 갈수록 격렬해진 정치적 격변과 결국 그로 인해 로마 공화정의 몰락이 초래되는 세기의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의 경력과 그들을 둘러싼 상황이 로마사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연구되는 주제로 손꼽히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로마의 상황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으며, 그만큼 보다 광범위한 비판과 보다 비관적인 전방이 확산되고 있었다. 로마는 짧은 시간에 건설된 대제국을 부실하게 운영하고 있었다. 농민들이 가격경쟁을 극복하지 못하고 팔 수밖에 없었던 토지들은 나중에 대농장으로 흡수되었다. 기원전 220년 원로원 의원들의 무역활동을 금지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던 법에 전쟁으로 축적된 자본을 농업에 투자하도록 의무화하는 규정을 삽입하였다. 농업위기는 사회-도덕 분야의 위기와 거의 동시에 발생하였다. 소규모 자영농민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로마 사회의 경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대외적인 약탈과 대내적인 노예노동에 의존하게 되었다. 노예들의 로마 유입은 끝없이 계속되었다. 기원전 177년 한해에 4만명의 사르데냐 노예들이 유입되었으며, 10년 후에는 15만명의 에페이로스인들이 로마로 끌려와K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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