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학(私學)과 서원
- 최초 등록일
- 2021.09.23
- 최종 저작일
- 2021.07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조선시대 사학(私學)과 서원"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성균관과 향교
1. 성균관
2. 향교
Ⅲ. 시기별 서원의 형태와 변천
1. 초기 서원
2. 중기 서원
3. 말기 서원
Ⅳ. 서원의 남설과 철폐
1. 서원의 남설
2. 서원 철폐령
3. 서원 철폐의 배경
Ⅴ. 결 론
Ⅵ. 참고 문헌
본문내용
Ⅰ. 서 론
서원은 16세기 이후 선현의 제사와 유생의 교육을 목적으로 세워진 사학(私學)을 의미한다. 서원의 명칭은 당나라 현종, 여정전서원(麗正殿書院)•집현전서원(集賢殿書院) 등의 설치에서 유래하였다. 유학이 교육을 중요시하는 까닭에, 고려 말 이후 성리학이 확산되면서 유학자들은 개인재산을 통틀어 지방에 서재(書齋)로 불리는 학교를 세우고 자제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16세기에 들어와 사화가 빈발하면서 정치에 뜻을 잃은 선비들은 아동교육에 박차를 가해 학교의 조직과 기능을 더욱 강화하고 여기에 선배 유학자들을 기리고 제사하는 사당(祠堂) 기능을 통합하여 서원(書院)이라는 새로운 교학기구를 창설했다. 따라서 서원(書院)은 지방 선비들이 성장하는 중요한 기반이다.
Ⅱ. 성균관과 향교
1. 성균관
성균관은 조선시대의 최고학부였다. 기본 목적은 교화였다. 이는 고려시대, 학교교육의 목적이 인재양성이었던 것과 다른 점이다. 성균관의 건물 구조를 보면,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문묘와 교학 공간인 학교로 구성되어 있다. 문묘는 다시 중앙에 대성전과 그 옆에 동무와 서무가 있었고, 학교는 중앙에 명륜당과 그 양쪽에 동재와 서재가 있었다. 대성정과 동, 서무는 공자를 위시한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안치해 놓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며, 명륜당은 강의장소, 동, 서재는 학생들의 기숙사였다.
참고 자료
이원재, 2001 『과거공부를 알아야 우리교육이 보인다』, 문음사
최범서, 2001 『소설 조선당쟁 5』, 오상
윤희면, 2004 『조선시대 서원과 양반』, 집문당
이호일, 2006 『조선의 서원』, 가람기획
정영근 정혜영 이원재 김창환, 2006 『교육학적 사유를 여는 교육의 철학과 역사』, 문음사
신봉승, 2009 『조선 정치의 꽃 정쟁』, 청아출판사
이문수, 2002 「흥선대원군의 개혁 정치와 그 한계성」, 한국동학학회, 동학연구 제11집
윤희면, 1999 「고종대의 서원 철폐와 양반 유림의 대응」,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근현대사연구 제10집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89727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http://ko.wikipedia.org/wiki/%EC%84%9C%EC%9B%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