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파리 한국대표단의 외교활동 성과와 의의
- 최초 등록일
- 2021.04.29
- 최종 저작일
- 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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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19년 파리 한국대표단의 외교활동 성과와 의의"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1919년 파리한국대표단의 조직
Ⅲ. 『파리 강화회의, 한국대표단의 활동 보고서』의 구성과 내용
Ⅳ. 파리한국대표단과 통신국의 주요 성과
Ⅴ. 『파리 강화회의, 한국대표단의 활동 보고서』의 자료적 가치
Ⅵ. 맺음말
Ⅶ. 참고 문헌
본문내용
『Reports from the Korean representatives at the Paris Peace talks, 1919』 (일명 『한국대표단의 파리강화회의 활동보고서』)는 1919년 파리강화회의를 전후한 시기에 한인들이 외교 업무와 관련해 주고받은 영어 · 프랑스 · 국한문 서한들의 모음집이다. 서한 작성자는 이대위 · 이승만 · 백일규 · 박용만 · 이종관 · 김규식 · 이관용 · 황기환 · 김탕 · 조소앙 · 현순 등이며 주요 외교 기관은 미국(본토 · 하와이· 시베리아 · 만주)의 대한인국민회, 프랑스의 파리 한국대표단,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상해 임시정부)이다. 파리 한국대표단은 본래 파리강화회의에 청원서와 비망록을 전해 한국의 문제를 논의할 수 있게 위원회[Hearing]을 마련하고자하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파리강화회의 참석 계획은 무산이 되고 만다. 대신 한국에 관한 논의가 파리강화회의 이후에 설립하는 국제연맹에서 다룰 수 있다는 답장을 접하게 되자 파리한국대표단은 국제연맹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설립과 독립국임을 승인토록 청원하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한다. 이 사료는 한국대표단의 활동이 1919년 파리강화회의 참석과 유럽에서의 한국에 대한 동정과지지 확보, 1919년 스위스 루체른의 만국사회당대회에서 한국의 독립결의안 채택까지의 과정을 수록했다.
이 사료를 선정한 이유는 2018년 12월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USC)에서 디지털 보존작업을 완료한 해외 한국독립운동 사료로 파리 1919년 파리강화회의 전후에 한국대표단 - 대한인국민회 – 상해 임시정부가 어떠한 방식으로 외교활동을 연계하였는지 재확인하는 자료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료에는 파리 한국대표단의 활동이 적극적인 행동계획을 바탕으로 전개되었다는 단서도 실려 있다. 선행연구에서는 김규식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활동의 일부를 주로 다루었다. 그러나 국제정세 측면에서 김규식의 파리강화회의 파견은 3·1운동보다는 당시 국제사회에 약소민족들의 독립의지를 알리는 흐름에 동참한 것이 더 큰 동기라 본다.
참고 자료
『Reports from the Korean representatives at the Paris Peace talks, 1919』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편찬위원회, 2007,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파리위원부』 21,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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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_, 2011,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서한집Ⅱ』 43, 국사편찬위원회; 2008, 「歐洲의 우리 事業」,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대유럽외교Ⅰ』 23, 국사편찬위원회.
___________, 2011, 「1910년대 황기환이 김규식에게 보낸 서한」,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서한집Ⅱ』 43, 국사편찬위원회.
방선주, 1989, 「박용만 평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