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금속공예품의 제작기법
- 최초 등록일
- 2021.04.23
- 최종 저작일
- 20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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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삼국의 금속공예
Ⅱ. 금속공예기법
1. 도금기법
Ⅲ. 금속공예기법의 이용사례
1. 금관총 출토 금관
2.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
3. 무령왕릉 출토 관식
4. 금동제일상유운문투조장식품
본문내용
여러가지 금속제들을 사용하여 장신구를 만들고 외부국가에서 들여온 여러가지 금속공예 기법을 사용하여 공예품 등을 본격적으로 제작한 시기는 삼국시대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신라는 여러 명문이나 기록들을 보아 금제품을 즐겨 사용하였던 것을 알 수있다. 신라는 금제품이 국가의 문물을 대표할 만큼 다량의 금제 유물을 보유한 국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금제품은 귀걸이, 관식, 요패, 팔찌 등 뿐만 아니라 여러 장식금구와 금제의 용기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신라의 금관이 북방계의 영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과 이 밖에도 고구려계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청동용기가 다량으로 출토되고 있는 점을 보아 북방계의 영향을 많이 받아 문화가 발전되었을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영향을 준 고구려의 금속공예 문화는 일찍이 많은 고분들이 도굴되어진 탓에 남아있는 금제품은 귀걸이와 반지정도에 그치지만 도금기술이 매우 발달되어 있어 마구, 식리, 관식, 불상 등에서도 그 기술이 보이고 있다.
백제는 한성, 웅진, 사비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유적, 유물과 양식 등을 남겼으나 각 지역에서의 수도 유지기간이 짧고, 무덤 구조의 대부분이 석실분이 었으며, 나당연합군에 의한 국가 등으로 일찍이 도굴이 성행되었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 공주의 무령왕릉이 완전한 상태로 발굴되게 되면서 백제의 새로운 문물이 나타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가야는 낙동강의 중류와 하류 유역에 흩어져있던 소국가로 완전한 통일을 이루지 못한채 백제와 신라에 의해 패망하였다. 그러나 소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야국의 지산동유적, 금관가야국의 대성동유적 등에서 가야의 매우 발달된 문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곳에서는 장신구나 마구,무구를 비롯한 다양한 금속공예품과 토기 제작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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