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사 정리
- 최초 등록일
- 2020.12.18
- 최종 저작일
- 20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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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상나라의 신정정치
점을 치게하던 왕의 관심사는 무엇이었는가
상제는 소뼈나 거북의 뱃가죽 겁질의 균열로 어떤 대답을 내렸는가
실제로 오떨 일이 발생했는가
商의 사회 구조
=귀족 : 백성(百姓)
=평민 : 직접 생산에 참여한 계층
=노예 : 전쟁포로
=은허에서 발견된 939기의 무덤안의 모습
왕을 중심으로 무덤 호위병의 시신과 머리와 손과 발이 잘린 시신의 혼재.
왕의 근처에서 아무런 저항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는 시신들과 머리와 손발이 잘린 시신들. 이들은 순장된 사람들보다 20배가 더 많았다고 함.
앞선상흔이 없는 자들은 상나라의 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만든 종교적 신념을 그대로 따르고 자발적으로 왕을 따라 순장된 상나라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강제로 목과 손발이 잘린채 살해된 상족 이외의 사람들이다. 전자는 상제를 정점으로 하는 신의 세계라는 통치의 수단이자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으로 표상되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지상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왕을 따라서 죽었다.
전쟁포로를 순장하는데 그들을 잔인하게 죽인 이유는 손발을 그대로 두고 순장되면 죽어서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서주시대 제후국의 분포/ 아틀라스
주족은 섬서성 위수에서 흥기. 고공단보 때 주원으로 이주. 궁실을 축조하고 읍락을 구성.
서백(문왕) 은 죽기전에 풍으로 수도를 옮김. 서백이 죽은 후 무왕이 12년만에 서방의 제후들을 규합해 상을 정복. 이때가 기원전 1046년. 무왕은 상을 정복하고 일족과 공신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봉건에 착수함. 수도를 풍에서 호로 옮김.
성왕 때 주공 단이 섭정. 주공은 낙읍에 상의 유민들을 동원해 낙읍 건설. 동방통치에 대한 전진기지로 삼음.
기원전 771년 융적의 침입으로 낙읍으로 수도를 옮겼는데 이 때까지를 서주라고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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