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행정제도의 변천과정 고찰
- 최초 등록일
- 2020.10.30
- 최종 저작일
- 2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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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지적행정제도의 변천과정 고찰"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광복 이전 시대(토지조사사업, 임야조사사업)
2. 광복 이후 시대 (행정자치부 지적과, 국토교통부 공간정보제도과)
본문내용
1. 광복 이전 시대
(토지조사사업, 임야조사사업)
우리나라는 고대국가에 어떤 형태이든 토지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지적행정체제가 있었겠지만 문헌상으로 명확한 모형은 없고, 토지제도의 일환으로 양전과 양안이란 형태의 모형을 취하여 고대부터 19세기 구한말까지 이어져 왔다. 구한말 당시 국가정세의 불안정과 예산의 제약 및 기술이 미숙 등 여러 가지 악조건이 겹쳐 뜻대로 되지 않았으나 개화의 물결과 함께 재래의 양전방식에서 근대식 지적제도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구한말 시대는 모든 제도를 개화의 방향으로 이끌게 가게 되었고, 특히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하여 근대적 제도의 체제를 갖추었다. 제도개혁의 하나로 관제개혁을 단행하여 중앙관제를 크게 의정부와 궁내부로 나누고 의정부 및에 8개 아무를 설치하였다. 지적관리체제는 내무아문의 판적국에서 관장하기 시작하여 오늘날 지적관리체제의 기구와 조직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종 32년(1895년 3월 25일)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내무아문은 내부를 고치고 대신관방아래 토목국과 판전국 등을 포함한 5개국을 두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