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외교사] 미국외교사 - 아이젠하워 행정부부터 트럼프 행정부 초기까지 -
- 최초 등록일
- 2020.10.09
- 최종 저작일
- 20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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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이젠하워 행정부부터 트럼프 행정부 초기까지의 미국외교사를 정리한 글입니다.
목차
1. 아이젠하워 행정부 (1953~1961)
2. 케네디 & 린든 존슨 행정부 (1961~1968)
3. 70년대 이후 미국 외교
4. 21세기 미국 외교
본문내용
아이젠하워 행정부 (1953~1961)
공산주의의 국제적 확산과 소련의 영향력 증대 및 과학기술의 진전에 대한 우려는 아이젠하워 행정부 시절 대부분의 미국 외교 정책을 지배했다. 소련의 위협과 더불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민족주의 운동 역시 미국에게 또 다른 위협이었다. 미국 관리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이러한 움직임을 지시하고 지지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동유럽뿐만 아니라 제 3세계까지 확산되는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공산주의의 침입을 적극적으로 저지하겠다는 취지의 독트린을 발표했으며 미 의회의 승인 없이 군대를 해외에 파견할 수 있는 행정권을 얻었으면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이 시기 미국의 첫 번째 개입은 독일에서 이루어졌다. 1953년 동베를린의 노동자들은 공산정권에 항의하며 봉기를 일으켰다. 봉기의 원인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시킨 가운데 생산성을 높이라고 하는 당국의 무리한 요구였다. 1953년 6월 16일, 70여 명의 노동자들이 베를린의 공사장에서 자연스럽게 이러한 새로운 조치에 불만을 터뜨렸다. 이들의 항의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다음날에는 10만 명의 노동자들이 베를린에 모였다. 시위는 더욱 번졌고 400개의 대도시와 중소 도시, 심지어 시골 마을까지 영향을 받았다. 아이젠하원 대통령은 이 사건을 통해 동독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서방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길 원했다. 이러한 목적 하에 동독인들에 대한 대규모 식량지원이 이루어졌다. 미국은 서베를린에 설치된 35개 유통센터를 통해 1,500만 달러 상당의 식량을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이 식량지원은 동독의 지도자였던 울브리히트를 수세에 몰아넣으면서 동독 정권을 흔들었다. 하지만 식량지원이 계속되자 서유럽 정부들은 서베를린에 대한 소련의 군사행동 가능성을 우려했고 동독 정권에 의한 통제가 강화되면서 식량원조가 더 이상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식량원조는 10월 초에 끝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