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민중으로 보는 역사 과제 (제주 4.3사건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20.06.29
- 최종 저작일
- 20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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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제주 4 3사건(제주 4 3항쟁)의 역사적 의미
Ⅱ. 제주 4 3사건(제주 4 3항쟁)의 인식
Ⅲ. 제주 4 3사건(제주 4 3항쟁)의 특별법
Ⅳ. 제주 4 3사건(제주 4 3항쟁)의 초토화작전
Ⅴ. 결론
본문내용
제주도 4,3사건은 미군정하에서 도민과 경찰이 충돌한 사건이며 관의 압정에 견디다 못한 주민이 최후에 들고 일어난 민중폭동이었다는 점은, 많은 학자의 연구를 통해서도 증명된 사실이고, 또한 정부도 지난날의 과오를 인정해 4,3사건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위한 특별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을 볼 때에서 전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기록만을 보더라도 4,3사건 전 과정을 통해 사망한 군인119명, 경찰 122명임에 반하여 제주도 주민은 1만 5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희생자수에 심각한 불균형이 초래되고 있다. 그것은 우월한 물리력을 바탕으로 한 어느 일방에 의한 대량학살이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주한미군 사령부의 ‘제주도 사건 종합보고서’를 보더라도 앞에서 말한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당시 상황을 초기에 파악하고 현명하게 처리하였다면 극소수의 인명피해로 단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었던 단순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미군정은 정보를 오판해 결과적으로 우둔하기 짝이 없는 실책을 저질렀고, 자신들의 과실을 잘 알고 있던 경찰도 사건해결보다는 죄상이 노출되어 자기들의 입지가 흔들릴까봐 진상을 은폐하기에만 급급하였다. 거기다가 공명심에 눈이 어두워 토초작전에 끼어든 군 수뇌부들까지도 사건을 원인으로부터 풀어가려고 생각치 않고 각자 자기의 이해득실에만 전념하다가 대폭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폭동진압의 책임자들은 같은 민족인 제주도민을 상대로 인간으로선 감히 행할 수 없는 잔학한 살상에 주력했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 민족이 살아 온 발자취이며 우리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뿌리이기도 하다. 그 역사에는 희열과 비탄, 평화와 시련이 얽혀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지난날의 영화를 감상적으로 즐기고 시련을 생각하여 분개하고자 함에 있지 않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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