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
- 최초 등록일
- 2020.01.13
- 최종 저작일
- 20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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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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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클림트 Gustav Klimt
1862. 7. 14 빈~1918. 2. 6 빈.
오스트리아의 화가, 빈 분리파의 창시자.
평생을 동반자로 함께 했던 에밀 플로게는 클림트가 죽는 순간까지 찾았던 사람이다.
또한 클림트의 많은 작품에 주인공이 되었고, 클림트는 그녀의 사진을 찍는 것도 즐겨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으며 상호간의 정신적 지주로서 항상 곁에 머물렀고
관계의 선을 절대로 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달콤한 사랑의 말도 오가지 않았으며 때론 사업의 동반자로서
때론 여행의 동지로서 만족했다는 것이다.
황금색의 황홀하고, 몽환적인 그림..클림트의 그림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관능적으로, 때로는 풍성함으로,
그리고 때로는 죽음(타나토스)의 유혹을 자아내지만
클림트의 그림이 묘사하는 여인들은 아름답다.
그도 그럴 것이 클림트만큼 여성을 사랑(?)한 화가가 또 어디 있었을까?
오죽하면 그의 별명이 '빈의 카사노바'였겠는가.
오스트리아 출신의 구스타프 클림트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끔찍이 아끼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였을 뿐이다.
드가의 독신과는 의미가 다르다.
그는 동료 화가인 에밀 쉰들러의 딸 '알마 쉰들러'부터 에밀리 플뢰게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여인을 품었고,
그 결과 14명이나 되는 사생아들을 세상에 남겼다.
극심한 빈곤에 허덕이며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의 데생 솜씨를 눈여겨 보았던
친척의 도움으로 14때인 1876년 '비엔나 장식미술학교'에 입학함으로써 전문적인 미술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페르디난트 라우프베르거, 한스 마카르트와 같이 당대의 저명한 화가들의 주목을 받으며 화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는 스물 한 살에 이 학교를 졸업하고 동료들과 미술가 조합을 결성하면서
미술장식 프로젝트를 수주하기도 하고 사교계의 초상화 제작을 의뢰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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