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를 보기 전에
- 최초 등록일
- 2019.10.25
- 최종 저작일
- 20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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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만주국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의 3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석 달 전 9월 28일, 친정에서 살던 고모 윤신영이 아들 송몽규를 낳았다. 고종사촌 관계인 윤동주와 송몽규는 그렇듯 한집에서 태어나 후일 죽음에 이르기까지 평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윤동주는 간도 이주민 3세였다. 1886년 함경북도 종성에 살던 윤동주의 증조부 윤재옥도 간도의 자동으로 이사했고, 1900년에는 기독교 장로였던 할아버지 윤하현에 의해 명동촌으로 이사했다. 1906년 10월 애국지사 이상설과 이동녕이 용정에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세웠다. 그런데 이듬해 4월 이상설이 용정을 떠나며 학교가 문을 닫게 되자 윤동주의 외삼촌 김약연이 명동에 명동서숙을 세운 다음 수많은 애국지사를 길러냈다. 명동서숙은 1908년 4월 명동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윤동주는 1925년 4월 4일 송몽규와 함께 명동소학교에 입학했다. 비교적 가정이 유복했던 그는 소학교 4학년 때부터 경성에서 간행하던 《어린이》, 《아이생활》을 구독하면서 문학의 꿈을 키웠고, 5학년 때 급우들과 함께 《새명동》이란 등사잡지를 만드는 등 활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1931년 명동소학교를 졸업한 윤동주는 송몽규와 함께 인근에 있는 중국인소학교 6학년에 편입하여 1년 동안 공부했다. 그의 시 〈별 헤는 밤〉에 나오는 패(佩), 옥(玉), 경(鏡)과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녀들을 만났을 것으로 추측되는 시기다.
1932년에 그는 송몽규와 함께 명동 북쪽의 소도시 용정에 있는 기독교계 학교인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이 때, 윤동주는 급우들과 함께 문예지를 만들고 축구선수로 활약했으며, 교내웅변대회에서 ‘땀 한 방울’이라는 화제로 참가하여 1등을 하는 등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였다.
1934년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작품을 쓰면서 시인의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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