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이이의 생애와 사상 A학점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19.10.15
- 최종 저작일
-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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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출생과 성장
2.산림활동과 경세관
3.율곡의 향촌활동
4.학문과 예술
5.아름다운 삶
6.후대인이 본 율곡 이이
본문내용
1. 출생과 성장.
율곡은 1536~1584년에 생존했던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성은 이(李), 이름은 이(理), 자는 숙헌이고 율곡은 그의 호이며 이외에 석담 또는 우재라는 호를 쓰기도 했다.
1) 유년기
중종 31년 12월 26일 강릉 북평촌에 있는 외가인 오죽헌에서 사헌부 감찰 이원수공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율곡은 어려서부터 인애지심(仁愛之心)이 지극하였으며 또 지인(知人)의 안목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6세 때 강릉 외가로부터 서울로 돌아왔고, 7세 때 율곡이 어려서부터 지인(知人)의 안목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진복창전 진복창은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그를 소인으로 치부하면서 장차 큰 화를 일으킬 사람으로 지목하며 쓴 글. 진복창은 을사사화 때 갖은 악행을 저지름.
」을 지었다. 그리고 이때 이미 문리를 통하여 사서오경에 모두 스스로 통했다. 8세 때에는 파주 율곡리에 있는 화석정에 올라「화석정시」를 지었으며, 9세 때 이륜행실도에 나오는 장공예의 구세동거도를 보고 감동하여 형제가 함께 부모를 봉양하며 사는 모습을 직접 그려 놓고 그것을 되새겼고, 11세에는 아버지가 위독하자 팔을 칼로 찔러 피를 내어 드리고 또 사당에 들어가 “나는 나이도 어리고 재주가 많아 귀신을 잘 섬길 수 있으나 아버지는 나이도 많고 나만큼 재주도 없으니 대신 나를 데려가 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그리고 13세에 진사초시에 합격하였다.
2) 청년기
16세 5월에 어머니인 사임당이 48세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셨다. 율곡은 처음 어머니로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또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듯하다. 율곡은 이에 상복을 벗고 난 뒤 다시 어머니를 위해 심상(心喪) 일년을 더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