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화암사 극락전
- 최초 등록일
- 2019.07.10
- 최종 저작일
- 20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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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화암사 극락전
3 배치형식
4 극락전 민흘림기둥
5 극락전 맞배지붕
6 극락전 다포식
7 도면
8 화암사 극락전 하앙부재의 결구방법
1) 하앙의 출현시기 및 발전
2) 하앙의 일반적인 기능
3) 극락전에 사용된 하앙의 종류와 특징
9 화암사 극락전 구성부재 특징
1) 기둥
2) 창방, 평방
3) 보
4) 도리
5) 공포
6)인방
10 결론
본문내용
서론
예전 고등학교 때 배운 한국건축사를 대학교 와서도 배우면서 대한민국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건축물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하앙식 건축물, 화암사 극락전에 대해 더 조사하고 싶어 조사하게 되었다.
무량수전과 화암사 극락전
국보 제 18호인 무량수전은 당나라에 유학 온 의상대사를 짝사랑하던 "선묘"는 그와의 사랑을 이루고자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그의 목석같은 마음과 변함없는 불심에 탄복해 스님에 귀의하게 이르게 된다. 10 여년 후, 깨달음을 얻은 의상대사는 귀국길에 오르기 전 "선묘"를 찾아갔지만 없어 결국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뒤늦게 달려온 "선묘"는 통곡을 하며 바닷물에 몸을 던져 용이 되었다. 그녀는 용이 되어 의상대사의 귀국길을 보호했다. 귀국 이후, 의상대사는 왕의 명을 받들어 절을 세우게 됐는데, 다른 종파들의 방해가 굉장히 심했다. 그러자 "선묘"는 큰 바윗돌로 변하여 그 종파의 머리 위에서 위협하여 방해를 뿌리뽑았다. 그렇게 영원히 뜬 바위가 된 "선묘"를 기리기 위해 의상대사는 그 절의 이름을 "부석사"로 정했다. 통일신라시대 676년(문무왕16년)2월 의상대사가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창건 되었으며 경문왕대(861~874)에 신림의 제자들이 부석사 화엄종 후 고려 말 진각국사 원응이 무량수전과 조사당 중건하였다. 1916년 무량수전,조사당 해체수리 하였고, 1977~1980년 일주문,천왕문,숭당등 새로 세웠다.
배치형식
화암사는 삼국시대에 초창되어 몇 차례의 중수 및 중창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동명이인인 성달생의 일화가 유명하며 조선 초기 중창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극락전은 정유재란(1597)에 불탄 것을 1605년에 재건하여 이어져 왔다. 목재 연대조사에서도 1605년경 지어진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화암사는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소형 산지 사찰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불명산 깊은 산 속에 중정을 중심으로 4개의 건물 (우화루, 극락전, 적묵당, 불명당)군으로 밀집되어 있으며 그 외부로 철영제와 명부전등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