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와사회통합> 탈북자 정책 문제
- 최초 등록일
- 2019.06.10
- 최종 저작일
- 2017.03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1. 서론
2. 본론
3. 결론
4. 출처
본문내용
1994년 이전에는 탈북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지금 탈북자라고 사람들은 대부분 94년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말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되고 90년에 들어와서는 남한의 북방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91년 유엔동시가입이 이루어지면서 북한은 내부적으로 체제유지를 강화하기위해 우리식 사회주의 노선을 펴게된다 우리식 사회주의란 여타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됨에 따라 자체의 사회주의를 추진한다는 하나의 선전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북한이 물질적인 부가 이루어지지 않고 또 사회주의 진영들과 주요 거래국가들과 과거 물물교환방식에서 경화결제방식으로 전환됨에 따라 북한의 교역활동이 급격하게 하락하고 경화가 없는 북한으로써는 우리식사회주의를 주장할 수 밖에 없게되었다. 이때 간접적으로 도입된 것이 바로 나진-선봉 자유무역 특별지구를 만들게 되는 원인이다. 부분 부분의 개방을 통해 그 속에서 벌어들이는 외화를 북한내부 소비에서 자체생산이 어려운 부분들을 보충한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 부분개방이 실패하고 93년 1차 핵위기 이후 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일정정도 경제적인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는 했다만 김일성 사망이후 대부분이 지원에 대한 부분을 질질 끌었습니다.
여기서 94년 김일성 사망당시 배급은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앞서 이야기 드린대로 상당히 국가에 물질적인 부가 부재하고, 자체생산할 수 있는 제품조차도 품질의 저하로 국제시장에서 팔리지 않게 되는 즉 당시 계획경제가 급격하게 하락하는 현상을 보이게 된다. 노동자들에게 배급을 주어야 하지만 실제로 94년 부터 배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서 95년에는 배급이 전면 중단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배급을 받지 못하고 일하러 가거나 불법적인 행위를 해서라도 살아남으려고 하는 노력들이 조금씩 발생하게 되고 이때부터 아사자가 발생하여 98년 정도면 300만명 아사자 설이 나오게 되었고 이러한 환경속에서 많은 탈북자들이 죽었으며, 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식량을 가지러 중국을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를 불법월경자라고 합니다.
참고 자료
네이버카페 ‘잊을수 없는 북한땅’
충북대학교 정치학과 교수-김도태 ‘탈북자 문제 이대로 둘것인가’
http://kin.naver.com/qna/-네이버 지식인
<새코리아>를 위한 402번째 기도소식지
1991.12.31. 경향신문 ‘탈북자 문제 남의일 아니다’
http://blog.daum.net/fspzogs111/92-김정화 ‘탈북자들의 실태와 해결방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