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현대사
- 최초 등록일
- 2019.02.26
- 최종 저작일
- 20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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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중회담
- 2013년 : 미국 이후 중국을 먼저 방문, 경제는 협력하였으나 외교-군사는 냉랭
- 2014년 : 성숙한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설정, 중국이 북한보다 먼저 남한을 옴, 일본-북한 연계
→ 한중 FTA 등 경제는 더욱 긴밀, 군사-외교는 입장차이 재확인
한반도 정책
- 시진핑은 국내 문제도 많기 때문에 동북아는 평화를 취하길 원함
- ‘한국에 의한 통일저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로 바뀜
→ 대응과제 : 한국은 수동적인 행동을 벗어나 능동적인 정책 발표 요구 되어짐
- 중국사례) 미국/소련/인도 분쟁으로 고립-1964년 핵실험성공–68년 대륙간탄도미사일장착–71년 핑퐁외교 실시
→ 북한도 핵으로 돌파하려함(요구: 1. 주한미군 철수 2. 대북전단 살포 금지) → 맞춰주면서 압박해야함
중국의 권력도(현 시진핑)
장쩌민(10년-상하이당) → 후진타오(10년-공청단) → 시진핑(10년 예상-태자당)
- 상하이당 : 상해를 거점으로 정치자금이 막대하고 제일 큰 파벌 이룸, 덩샤오핑 개혁정책의 수혜자, 균형발전
- 공산주의청년단 : 핵심인물을 키우기위해 청년그룹을 끌어들여 만듬 (시초: 호요방), 개혁개방의 피해계층 대변
- 태자당 : 혁명원로나 고위관료의 자녀들로 구성된 파벌, 덩샤오핑 개혁정책의 수혜자, 균형발전
- 상하이당과 공산주의청년당의 힘이 비등하자 그보다 약한 태자당에 주석자리를 넘겨주고 나머지 자리를 나눔
- 상하이당은 별다른 인물이 없었고, 공청단은 호요방과 시중쉰의 관계 때문에 시진핑에게 양보해도 상관없음
- 태자당에는 시진핑과 보시라이가 있었으나 보시라이(아내)의 부정부패로 몰락
- 호요방이 덩샤오핑과 갈등할 때 시중쉰이 끝까지 호요방을 지지하여 같이 몰락함
공산당 뽑는 과정
1. 당원 8200만명 : 고등학교 때 공산주의 청년단 활동(학생회장, 수석), 스무살 때 탈퇴하고 다시 정식으로 가입
2. 당대표 2270명 : 당원들이 직접 투표함(차액투표)
3. 중앙위원회 370명 : 뽑힐 때 비전을 제시함, 신분 철저 검증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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