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최고의 경제발전안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18.08.27
- 최종 저작일
- 20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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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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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박제가의 경제정책론
2. 대한민국 경제력의 근간
Ⅲ. 결론
본문내용
Ⅱ. 본론
조선시대의 경제흐름을 정리하는 몇 명의 학자들이 있다. 물론 당시의 사회적 시대성을 반영하여, 좋은 의견을 제시한 학자들의 의견이 수렴이 되었다면, 조금더 나은 효과를 기대할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왕의 정치와 신념에 따라 나라의 경제, 사회, 문화가 결정되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왕에게 책임전가할수 없다. 그 뒤를 받치고 있던 세력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장난을 친 사건도 다양하니 말이다. 이런 그들의 태도는 조선을 식민의 삶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조선의 식민지 삶은 어쩌면 과거의 오랜 시간동안 유지해온 나약함등을 들수가 있겠다. 이는 근본적인 경제적인 근본 기반이 뿌리 내리지 못한 탓이다.
결국 조선이 전락된 것은 외압이 가혹한 반면, 국력이 약하였기 때문이었다. 조선에 대한 국제 조약의 불평등성은 일본보다 훨씬 가혹하고 중국보다 덜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불리한 점은 제국주의가 본격화되는 시점에 개항하여 자주적 근대화에 주어진 시간이 매우 짧았던 것이다. 근대세계에 문호를 개방한 지 30년이 안되어 일본은 조선의 식민지화에 본격 착수하였다. 그런데 러일전쟁까지도 조선은 근대 공업 국가로서 발돋움하지 못해, 제국주의시대에 국력으로 주변 강대국에 대적하기도, 영세중립화를 실현하기도 어려웠다. 1900년경 일본의 국내총생산은 조선의 5배 정도였는데, 재정 규모의 격차는 한층 컸다.
당시 경제력의 5배 차이라니, 일본은 조선에 대한 야욕을 그대로 접어두기에 경제력이 워낙에 뛰어났다. 이런 결과를 가져올만큼 조선이 인제가 없었던가, 혹은 그렇게 나약한 나라의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던가. 폐쇄적인 정치의 흐름과 사상이 결탁하여 이런 결론을 나타낸것이다. 조선에도 이를 뒤집을만한 뛰어난 인재들이 있다.
당시의 세태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위인이 있던것도 분명한 일이다. 정약용이 그러했고, 박제가가 그러했다.
참고 자료
“박제가의 경제정책론 : 조선시대 최고의 경제발전안” 이헌창, 한국경제포럼
“박제가” 정성희, 실학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