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부작용에 대한 논쟁과 나의 의견
- 최초 등록일
- 2018.02.28
- 최종 저작일
- 20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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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오랜 시간 동안 우유는 완전식품으로 여겨졌다. 아돌프 히틀러를 무찌르고 2차세계대전을 종결시킨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은 말했다. ‘어떤 사회든 어린이에게 우유를 먹이는 것만큼 훌륭한 투자는 없다.’ 라고.
실제로 서구사회에서 우유는 식생활의 중요한 한 축 이었다. 고대인에게 부족한 지방과 단백질. 현대인과 고대인 모두에게 부족한 칼슘. 이러한 영양소를 가장 손쉽게 얻는 방법 중 하나는 가축의 젖을 마시는 것이었다. 인식 역시 최소한 근대 이후로는 매우 좋았다. 스위스 문학의 자존심<<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만 하더라도 하이디의 친구인 앉은뱅이 부잣집 아가씨 클라라가, 신선한 우유를 먹음으로 하여 장애를 극복하는 결말로 끝을 맺었다. 비록 소설일 뿐이지만, 이 소설이 당대의 베스트셀러였단 점에서 20세기 이전의 유럽인들도 우유는 건강식품이다. 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는 될 수 있으리라.
그에 비해 동북아 문화권은 오랫동안 우유를 마시지 않았다. 동북아 문화권을 지탱하는 작물인 쌀. 쌀의 생산량은 서구문명의 주식인 밀보다 훨씬 높다. 같은 면적에서 재배할 경우 쌀의 생산량은 밀의 3배. 하지만 노동량 역시 3배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농사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소는 가축 이상의 가축이었고, 그러한 소의 젖을 빼앗아 먹는 행위도 그다지 좋지 않게 여겨졌다.
물론 서양처럼 보편적인 식품이 아니었다 뿐이지, 우유를 아주 먹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기를 사랑했던, 그리고 고기 못지않게 우유 역시 사랑하셨던 한글의 창시자 세종대왕님, 세종과 함께 조선의 위대한 임금으로 칭송 받는 영조대왕님. 그 외에도 수많은 조선의 왕들이 우유와 유제품을 즐기셨다. 그리고 신하들은 상소를 올렸다. ‘소가 사람을 위해 평생을 고생하는데 그 새끼가 먹을 것까지 빼앗는 것은 유교적 도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참고 자료
http://news.joins.com/article/4371461 중앙일보
http://sillok.history.go.kr/id/kua_14601025_001 영조실록 영조 46년 1월 25일 계묘 1번째기사
http://www.mjmedi.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86 민족의학신문
http://www.woollimcoop.org/?c=4/33&uid=1365 두례생협 <<우유의역습>> 요약정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11776 오마이뉴스
http://dc.koreatimes.com/article/871376 미주 한국일보
http://www.f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231 대한급식신문
https://namu.wiki/w/%EC%9A%B0%EC%9C%A0 나무위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