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15.06.18
- 최종 저작일
- 20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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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수렴청정과 한명회의 그늘
2. 태평성대와 사림파의 중앙진출
3. 참고문헌
본문내용
- 병약한 예종이 급사를 하게 되자 왕실과 조정은 후계자의 선정에 고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관례에 따르게 된다면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이 등극을 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그러나 고작 네 살이었던 탓에 세종의 왕비 정희왕후는 큰아들인 덕종(의경세자)의 아들인 잘산군(성종)을 왕으로서 추대를 하게 되었다. 잘산군의 친형인 월산대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추대가 된 것은 당시의 실권자였던 장인인 한명회의 압력이 크게 되었을 것이다. 성종 역시 열세 살의 어린 나이였으므로 예종처럼 정희왕후에 의한 수렴청정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정희왕후의 수렴청저이 지속이 되었다라고는 하나 실제 권력은 한명회와 신숙주, 정인지, 유자광을 중심으로 한 훈구파들이 쥐고 있었다. 훈구파는 계유정난과 남이 장군의 역모 사건을 통해서 권력을 잡은 세력들이었다.
참고 자료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왕의 역사(2011) * 저자 : 신재석 * 출판사 : (주)삼양미디어
전쟁으로 읽는 한국사(2013) * 저자 : 김광일 * 출판사 : 도서출판 은행나무
한국의 전투와 무기(2008) * 저자 : 신현득 외 * 출판사 : 현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