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의 통일과 통합] 예멘의 통일과정, 통일 전의 남북예멘과 통일 후 문제점, 예멘통일이 한국(남북통일)에 주는 시사점
- 최초 등록일
- 2015.06.09
- 최종 저작일
- 20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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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예멘민족의 정통성
II. 통일 전의 남예멘과 북예멘
1. 북예멘
2. 남예멘
3. 남북예멘의 비교
III. 통일과정
1. 1972~1978 협상과정
2. 1979~1985 협상과정
3. 1986~1990 협상과정
IV. 통일의 저해요인과 촉진요인
V. 통일 후 문제점
1. 정치통합
2. 경제통합
3. 법체제의 통합
4. 사회통합
5. 교육통합
VI. 재분단 위기와 무력 통일
VII. 예멘통일이 주는 시사점
본문내용
1. 예멘민족의 정통성
예멘이 하나의 국가로서 통일하려는 민족운동은 예멘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동질성 요소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는 역사의 계속성에서 성장된 민족감정이었다. 예멘인은 하나의 역사와 하나의 언어와 종교를 가진 주민으로, 한 지역에 거주하는 공동체생활로 민족적인 주민의식이 강하였다. 이는 오랜 역사적 경험에서 생성된 예멘주민의 민족감정이었다.
기독교문화가 소개되기 이전에 시바여왕으로 유명한 시바(Sheba)왕국은 1천 년 간 번영을 누렸으며, 시바왕국의 역사에서 예멘주민은 동질성을 가진 민족으로 성장하였다. 그 후 히므야리(Himyarite)왕조로 이어져서 예멘은 이슬람 이전까지 1천 6백년간을 같은 문화의 지배 하에서 공동체로 생활하였다.
7세기 이슬람으로 개종하였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니파와는 다른 시아파무슬림공동체로 자이드이맘이 통치하여 왔다. 이맘은 이슬람의 지도자이며, 898년에서 1962년 남예멘 군사쿠데타가발발하기 전까지 예멘민족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정치적 정통성과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예멘 내 수니파인 샤피(Shafii)무슬림들도 이맘제를 인정하고 있었다. 이맘제는 수니의 칼리프제도와 같은 의미의 이슬람공동체 지도자 직위이다. 무함마드의 혈통주의를 주장하며 무함바드선지자와 그의 사위인 4대 칼리프였던 알리를 정통성을 가진 칼리프로 인정하는 이데올로기 성향을 시아파라고 부른다.
따라서 이슬람지도자들이 만장일치제도에 의하여 이맘이 선출되어야 하며 세습제도로 권력이 이어질 때는 정통성을 상실한다. 1927년 이함 야흐야(yahya)가 아들인 아흐마드(Ahmad)에게 이맘직을 승계시켰을 때 세습제문제로 예멘의 토후들은, 특히 수니파의 샤피무슬림들은 아흐마드의 이맘직 계승에 반대하였으며 예멘은 내란상태로 발전하였다. 남예멘지역인 영국식민지지역의 토후들도 반이맘세력을 지원하였다. 중동에서는 전통적인 통치가 사회안정에 필요한 요소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