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과 야당의 전세정책
- 최초 등록일
- 2014.09.05
- 최종 저작일
- 2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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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 1장 서론
제 1절. 연구의 배경과 목적
제 2장 이론적 고찰
제 1절. 한성의 인구 및 배경
제 2절. 경성의 인구 및 배경
제 3장 일제 강점기 주택정책 분석
제 1절. 토지조사 및 경성의 주택부족률
제 2절. 부영주택
제 3절. 토막민 주거대책
제 4절. 주택영단의 설치
제 4장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1. 연구의 배경과 목적
서울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이다. 현재의 행정구역상 명칭인 서울은 역사적 변천에 따라 조선시대에는 한성 그리고 일제시대에는 경성이라는 이름으로 각기 불려져 왔다.
경제적으로 실패한 조선인과 지방에서 농지를 수탈당한 조선인들은 성외로 몰려들면서 그 당시 성외 경성은 빈민굴 또는 빈민도시로 전락했다. 경성부의 경우 단순한 주택 구입의 어려움을 넘어 주택난으로 불릴 만큼 부민들의 주택문제는 심각했다.
본 연구에서는 역사적 변천에 따라 각기 불러져 온 한성과 경성의 이론적 고찰과 일제강점기 주택 문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하면서 식민당국의 주택정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일제강점기 총독부 및 경성부 주택정책 방향의 함의가 무엇인지 검토 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중 략>
주택영단은 1936년의 행정구획의 확장 및 도시화로 인한 심각한 도시문제 및 주택문제의 해결 및 일본인들을 위한 신시가지의 확대를 위해 시행된 것이다. 1936년의 경계확장에 의하여 새로이 편입된 지역은 토지구획정리사업에 의하여 새로운 도시주거지로서 등장하게 되는데, 이 주거지는 구도시의 외곽에서 이루어진 산업도시로의 도시화과정에서 수반된 것으로 이러한 것들은 영단주택 건립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 일본 본토에서는 이미 1937년 자국의 노동자 주택 문제에 대하여 생산력 증가를 위해서는 주거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논리에서 접근하여, 39년 노동자주택 공급 3개년 계획, 주택대책요강 등이 발표되었고, 총독부에서 시자기계획에 의해 조성하겠다던 토지를 민간 회사, 관공서에서 조합 형식으로 직원에게 주택을 지어 제공할 수 있게 하였다.
1941년 주택의 건설과 분양까지 담당하는 공영기구로 '조선주택영단'을 설립하였다. 주택영단은 각종 산업 등으로 노동자의 도시집중화가 현저해지고 주택난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오직 공리적 견지에서 계획적으로 중소주택을 건설한다는 취지하에서 조선주택영단이란 기구를 통하여 건설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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