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신라 민정문서를 통해본 민의 실태
- 최초 등록일
- 2003.06.11
- 최종 저작일
- 2003.06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민정문서(民政文書)란...
1. 토지제도와 농민의 생활
2. 조․용․조(租庸調)와 군역(軍役)의 의무
~끝내면서~
본문내용
일본 도오다이지(東大寺) 쇼소인(正倉院) 중창(中倉)에 소장되어 있는 신라시대의 촌락에 대한 기록문서.로써ꡐ신라민정문서(新羅民政文書)ꡑ․ꡐ신라장적(新羅帳籍)ꡑ․ꡐ신라촌락장적(新羅村落帳籍)ꡑ․ꡐ신라촌장적(新羅村帳籍)ꡑ이라고도 한다.
4개 촌의 문서는 모두 ① 촌명(村名) ② 촌역(村域), ③ 연(烟), ④ 구(口), ⑤ 우마(牛馬), ⑥ 토지, ⑦ 수목, ⑧ 호구의 감소, ⑨ 우마의 감소 ⑩ 수목의 감소 순으로 일정하게 기재되었다. 이처럼 국가가 촌을 대상으로 일체의 사항을 파악해 행정적으로 문서를 완결지워 놓았다는 사실은 문서의 개별촌이 행정촌이었다는 의미가 된다. 개별촌은 10~15호의 공연(孔烟)으로 이루어졌고, 촌역은 반경이 1.3~3.7km 정도였다. 대개 자연촌락은 반경 730m 범위 내에서 형성되므로, 문서상의 개별촌은 2~3개의 자연촌으로 이루어진 행정촌이었다고 할 수 있다. C촌을 제외한 나머지 촌의 둘레는 A촌이 5,725보(步), B촌이 1만 2830보, 그리고 D촌이 4,800보였다. 문무왕 12년(672)에 쌓은 남한산성의 둘레 4,360보와 비교한다면, D촌은 남한산성보다 조금 더 크고, 나머지 촌은 2~3배정도 되었다. 따라서 당시의 촌역에는 주거지․경작지 뿐 아니라 산천이 포함되어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