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신분제
- 최초 등록일
- 2003.05.24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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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신분제의 개편
◎고려말기의 사회신분문제
◎조선 초의 신분제 개선
1)양인 증대책
2) 신분에 따른 국역 부과
3)호적의 정비
4)호적법을 통한 농업생산의 안정모색
◎여말선초의 농업 부문의 변화상과 신분제 정비의 방향
* 신분제의 두 견해
1) 4분설
2) 양분설
본문내용
* 신분제의 개편
◎고려말기의 사회신분문제
고려 말기의 정치적 불안은 여러 부문에서 제기 되었지만 특히 사회 경제적 모순과 갈등으로 표출되는 사회신분 및 농지소유와 경영의 문란에서 야기되었다. 사회신분은 정치권에서, 또는 경제활동에서 일정한 직업을 혈연적으로 세습하면서 형성된 사회관행에 토대를 갖고 있었다. 국가는 국가의 재정기반으로서 사회신분의 역할 분담과 행동이 경제활동에서 유기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정치적 안정을 달성할 수 있었다.
고려 말기의 사회, 경제, 정치적 모순과 갈등 속에서 나타나는 사회신분문제는 대체로 국역(國役) 부담층의 혼란에 있다. 국역 부담층의 혼란은 국역 담당자인 양인층의 불안으로 나타나고 있어 이들 기층민을 안집시키려면 국역에 대한 보상을 적절히 하여 국역 담당층이 다른 신분층으로 전입할 경우 불리해지는 여건을 창출 유도 해야했다. 양인의 부족으로 국가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권의 법제적 노력은 호적법의 정비와 호적법의 정확한 운영으로 추구되었다.
고려시기의 사회신분은 직역(職役)과 혼인을 통한 직역의 세습을 통하여 한 시기의 질서체계를 형성하였다. 그것은 직역이 효율적이고 성장 지향적인 속성을 세습이라는 관행을 통하여 유지, 보존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