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의 활동과 업적에 대해
- 최초 등록일
- 2014.01.01
- 최종 저작일
-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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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언더우드의 성장과정
2. 언더우드의 한국 내에서의 활동과 업적
1) 의사 및 전문 교육선도자로서 체계적 교육환경 구축
2) 서구근대문명의 전파 및 한국선교 확장
Ⅲ. 결론
본문내용
한국교회는 천주교회나 개신교회 할 것 없이 선교사가 입국하기 전에 자생적으로 생겨난 점에 있어서 세계 선교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한국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분명 서양의 종교였으며, 외국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의 결과로 우리 땅에 수용될 수 있었다는 것은 자명하다.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은 1882년 5월 22일에 조선과 미국사이에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이었다. 조선정부는 서양의 기독교가 국내에 전파되는 것을 강력하게 금하고 있었으나, 이 조약의 소득가운데 하나는 기독교 금지조항이 명문화되지 않았다.
이후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에 개신교 선교사로 입국한 이는 의료선교사 알렌이었다. 원래 중국선교사로 파송을 받았으나, 서울에서 의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그는 개신교 선교사로는 처음으로 1884년 9월 20일 제물포를 통해 한국에 입국하게 되었으며, 그의 공식적인 직함은 미국 공사관 부속의사였다.
1884년 12월 4일에 일어난 갑신정변 과정에서, 급진 개화파에 의해 커다란 자상(刺傷)을 입어 생명이 위독했던 민영익을 치료한 것을 계기로 하여 고종과 조정의 신임을 얻게 된 알렌은 일종의 왕립병원인 광혜원(이후 제중원으로 이름이 바뀜)을 설립하게 된다. 그는 이 병원을 다른 미국인 의사를 초빙하여 운영할 예정이며, 이들의 보수는 미국에 있는 자선기관 (benevolent society)으로부터 받게 될 것이라고 조선정부에 보고하고 있다. 알렌의 의중 속에는 이 병원의 설립이 확고하게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는 미국 선교사들이나 거기 관련된 인사들을 이 기관을 통해 입국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언더우드는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와 함께 1885년 4월 5일 제물포 항을 통해 입국하게 되며, 서울에 들어온 지 3일 만인 4월 10일부터 제중원에서 일하였다.
이후 언더우드는 1885년 말부터 독단적인 사업을 시도했는데, 그것은 고아원의 설립이었다. 고아들을 위한 집을 장만하고 이들에게 한문, 한국어, 영어를 가르쳤다.
참고 자료
김문호 역(1985), 「언더우드회상기」, 기독교사상.
박혜수(2004), 「언더우드 부인의 선교활동: 남편 언더우드에 대한 협력과 이해를 바탕으 로」,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이성전(2007), 「미국선교사와 한국근대교육」,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최영근(2001), 「초기 미국선교사 언더우드와 마펫 비교연구」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석 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