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과 다산의 교육사상 비교
- 최초 등록일
- 2013.08.30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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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이황의 교육사상
2. 다산의 교육사상
본문내용
이황의 교육사상
성리학이 우리나라에 수용된 것은 대개 고려의 충렬왕 16년에 안향이 원나라의 연경에 가서 주자의 사상을 배워 와서 전한 것을 그 최초로 여긴다. 안향이 주자학을 배워올 당시인 고려 말기는 유학자들이 불교의 교단과 승려들의 타락상을 폭로하면서 불교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형성도어 있던 시기였다. 성리학은 전통 유학에 비하여 불교의 교리를 비판하는 체계적인 이론을 세웠기 때문에 공격은 한층 더 날카로웠고 설득력을 지닐 수가 있었다.
그들은 당시 불교의 비리를 척결하고 중국민족이 세운 명나라를 가까이 하는 외교적 노선의 전환을 촉구하는데 있어서 성리학을 이론적-도덕적 배경으로 삼았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하에서 수용된 성리학은 결국 혁명에 의해서 새로이 창건된 조선조의 통치이념으로 공식적 관학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성리학자들의 일반적인 경향으로 말하자면, 이는 사물과 변화의 소이연(所以然)에 해당하는 것으로 질서, 법칙, 이치와 같은 것을 뜻하고, 주희가 밝힌 그대로 형이상의 것이라고 언급된다.
< 중 략 >
효는 부모와 임금을 섬기게 하는 소이이고, 제는 어른을 섬기게 하는 소이이고, 자는 대중을 부리게 하는 소이이다. 그러므로 효제는 재하자가 재상자에게 드리는 윤리이고, 자는 재상자가 재하자에게 배푸는 덕이다. 이 세 가지는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근본으로 삼아야 할 덕목이다.
그러나 종래에는 재하자의 윤리만 강조되고 재상자의 윤리는 문제된지 않았다. 그 결과 교육에서는 효제만이 강조되었다. 자를 효제와 동격으로 설정한 것은 다산의 독특한 견해이다. 자를 제시했던 이유는 재상자는 재하자로부터 효제를 수용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와 대등한 노력을 재하자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하는 위민의식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다산은 오교를 이해함에 있어서도 수직적인 관계로만 파악하려는 것을 지향하고 상호관계 내지는 대대관계로 파악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