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의 인식과 논리 서평
- 최초 등록일
- 2013.06.03
- 최종 저작일
- 2013.04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목차
Ⅰ. 서론
Ⅱ. 신라의 백제 통일 전쟁
1) 일통삼한의 의식
2) 신라통일론의 함의
Ⅲ. 고대와 중세의 시대구분
Ⅳ.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고대사는 인류가 기록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입니다. 현재로부터 가장 먼 시기이기 때문에 고대사 연구에 대한 사료가 부족합니다. 사료의 부족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 고대사는 역사가들에게 절망적인 연구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역사적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는 연구 대상이기도 합니다.1) 또한 고대사는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현재의 성격과 위치를 규명하는 것으로 역사를 인식하였을 때 고대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파악하느냐에 따라 현재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제식민통치시기에 민족말살정치의 일환으로 일제가 왜곡한 역사를 배운 우리 민족은 현재를 파악함에 있어 왜곡되어온 고대사를 올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 략>
또 문무왕과 신문왕은 불만을 품은 진골 귀족들을 율령에 따라 숙청함으로 체제를 안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성격은 한국 중세사회의 특징인 중앙집권성을 고려할 때 고대사에서 새로운 사회의 이행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18) 발해에서도 대조영, 무왕 대무예, 문왕 대흠무를 거치면서 왕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체제를 수립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남한학계에서는 발해사회를 고대사회로 이해하지만 남북국이 고대사회로서 삼국의 대내외적 모순을 지양하는 과정에서 성립되었으므로 신라의 경우에 비추어 발해사회의 역사적 성격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19) 남북국은 모두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수립하는 데 필요한 지배기구를 재편성하였습니다. 이는 당제를 수용한 것으로 중앙집권체제와 그에 따라 지배기구 편성은 중세사회의 통치구조를 전형화하였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20)
신라의 신분과 토지제도의 면에서는 중앙집권체제의 수립으로 골품귀족의 관료화와 백성의 공민화에 대응하는 문무관료전과 백성 정전의 지급이 가능해졌습니다. 비록 녹음이 부활한 한계는 있었지만 이제 농민의 수취자의 자의성이 배제되지 않았던 삼국시대의 농민과는 달리 토지 경작을 매개로 일정액의 조?용?조를 부담하는 중세적 농민으로 바뀌었습니다.21)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