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우리나라 머리모양의 변천
- 최초 등록일
- 2002.12.13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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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 머리모양의 변천에 대하여 개화기 이후부터 개화기·일제강점기와 현대로 나누어 참고사진을 덧붙여 살펴보았다.
목차
·서론
·본론
1.개화기와 일제강점기(1876~1945)
2.현대(1945~1995)
·결론
본문내용
1.개화기와 일제강점기 (1876~1945)
1985년 11월 고종의 단발령에 의해 상투가 잘리게 되지만 계속 상투를 틀고 망건과 좁은 갓을 쓴 사람도 적지 않았다. 유건을 쓴 선비들은 “상투를 베는 것은 오랑캐의 풍속이니 단발령을 도로 거두소서.”라는 상소를 올렸고, 백성들은 “죽으면 죽었지 상투는 못 내놓겠소.”하며 슬퍼했다고 한다. 총각은 머리를 길게 땋다가 관례(성년식) 후에는 상투를 틀었다. 그러나 1910년의 한일합방조약으로 인하여 단발이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고 한다. 단발령과 양복착용에 대한 시민의 견해는 독립신문의 경우 “머리 깎고 양복 입는 것은 기둥도 세우기 전 장판부터 놓는 격으로 선후는 바뀌었으나 언제든지 할 일이며 백성에게 편리한 일인즉 정부에서 억지로 시키지 말고 백성에게 맡기도록 하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단발은 손질하는 데 시간이 절약되고 머리감기 편리하고, 의복의 청결이 유지되고 활동하기 편하며 머리 모양을 얼굴에 맞게 변화시켜 빗을 수 있다. 그러나 미장원에 가야 하는 금전의 낭비와 한복과의 조화가 어렵다는 의견이 있어다. 그보다 더 문제가 된 것은 남자의 단발이 1910년대에 실시되는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간의 시비가 있듯이 여자의 단발에도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으며, 귀밑머리를 푸는 일, 옆가리마를 하는 일 등에도 논란이 있었다.
쪽진머리는 조선시대 후기의 모양과 같으나 목뒤로 늘여지게 쪽지던 것을 조금 올려 하는 경향이었다. 트레머리는 앞이마에서 옆가리마를 타고 뒤에서 머리를 땋아 머리 뒤에 넓적하게 틀어 붙여 빗는 머리로서 크게 빗는 것이 유행이라서 머리심(게바다)을 넣고 빗었다. 그 밖에 S자 모양으로 틀어 머리 뒤에 종으로 붙이는 S자 머리와 8자 모양으로, 머리 뒤에 횡으로 틀어 붙인 8자머리, 양쪽 귀를 가려 빗는 머리, 도우넛 모양으로 빗어 붙이는 말똥머리, 로루마끼머리 등이 유행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