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통사] 개화기의 한문학
- 최초 등록일
- 2005.05.07
- 최종 저작일
- 2002.09
- 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개화기의 시대적 배경
문학과 사상에서 정통 재확인
개화․계몽으로의 길
본문내용
개화기의 시대적 배경
조선 후기 19세기 말 개항으로부터 1910년대에 이르는 시기를 우리 역사에서 개화기라 부른다. 조선은 1876년 일본과의 불평등 조약을 통해 개항을 하게 된다. 개항 이후 조선은 청.일.중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의 정치적 침략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에 승리한 일본이 침략의 마수를 노골적으로 뻗쳤고, 이에 저항하는 의병 운동이 전국에서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문학과 사상에서 정통 재확인
① 이유원(1814~1888)은 명분론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안팎의 정세에 대해서 융통성 있게 대처하려고 하였다. 문학 창작에서는 악부시의 전통을 확장하는 데 특히 힘썼다. <임하필기>, <해동악부>, <소악부>, <속악가사>, <관극팔령> 등을 저술하였다.
※ <해동악부>(海桐樂府)는 100수로 역대의 가악(歌樂)을 노래해 지난날의 유산을 정리했으며, 자기 당대에 민간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여러 형태의 민속가요에 대해서 깊은 애착을 가지고 악부시를 짓는 데 큰 열의를 보였다. 한시가 지체를 가늠하는데 소용되는 고답적인 문학에 머물지 않고 소재나 표현을 우리말 노래에 근접시켜 하층과 공감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조선 후기 동안의 각성을 더욱 고양시키고자 했다.
② 척사위정파인 이항로, 기정진, 이진상등은 일원론적 주리론을 위기 극복을 위한 강령으로 삼았다. 양이(洋夷)의 정신적 물질적 침투에 대처하기 위해서 정통을 재확인하는 강경한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척사위정의 주장을 내세움. 문학창작에서 융통성을 보이는 자세를 배격하고 문학이 의리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했다. 문학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나, 마음의 근본을 다스리는 데 힘써야 하며, 세태에 영합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계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