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인의 삶
- 최초 등록일
- 2002.12.07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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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봉건제도와 장원제도
2.장원제도
3.중세 농업혁명
2.기사제도
기사제도의 기원
기사의 권리와 의무
기사의 생활
3.농민
4.흑사병
본문내용
1. 봉건제도와 장원제도
1) 봉건제의 특징
유럽은 800년 이후 혼란과 무질서 상태가 계속되었으며, 그것이 봉건화 과정을 촉진시켰다. 즉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강자가 약자를 힘으로 지배하는 무사들의 지배체제로 등장한 것이 봉건제도였다. 봉건제도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역사학자들의 견해는 다양하다.
기사들의 주종관계는 게르만의 종사제와 로마의 피보호제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800년경 이후에 서유럽에서는 자유민들 중에 자신의 안전과 생계를 위하여 유력자에게 몸을 의탁하고 그 대신 유력자에게 일정한 정치 혹은 군사적 봉사를 하는 자가 생기게 되었다. 여기서 몸을 의탁하는 자가 봉신(封臣)이고 유력자가 주군(主君)이 된다. 이 때 봉신은 봉사의 대가로 주군에게서 토지를 받게 되는데 이것을 봉(Fief)이라 하였다. 주종제에 입각한 봉건적 군신관계는 봉신이 신서(臣誓: Homage)와 충성의 예식을 주군에게 드린 후 주군이 그에게 수봉(授封: Investiture)의 절차를 베품으로서 성립되었다.
이렇게 맺어진 군신관계는 쌍무적인 계약관계였다. 봉신은 주군에게 봉사와 조언 그리고 부조의 의무를 지고 있었다. 봉사는 주로 주군과 함께 싸움에 나가는 일이었고, 조언은 주군의 궁정 즉 법정에 참석하는 일이었다. 부조는 주군의 장자 기사 서임이나 장녀의 결혼 때의 부조, 주군이 포로로 잡혔을 때의 몸값의 부담 등 재정적 원조였다. 이에 대하여 주군은 봉신을 보호하고 부양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가능하면 봉신의 신체적 보호는 물론 봉신이 재판을 받으면, 그를 비호해 주어야 한다.
봉건제의 특징은 첫째 이들 주군과 봉신이 모두 무사로서 원래 같은 신분에 속한 사람들이었으며, 그들 사이에 맺어진 주종관계는 평등한 사람들 사이에 체결된 계약관계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어느 한편이 당초의 계약 사항을 어길 경우 원칙적으로 그러한 관계는 파기될 수 있는 것이다. 즉 봉신이 봉사의 의무를 소홀히 할 때 주군이 그의 봉토를 몰수 할 수 있었음은 물론 거꾸로 주군이 보호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는 봉신이 주군에 대한 충성을 거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는 봉건적 계약의 위반을 선언하기는 봉신 보다 주군이 더 용이하였고, 봉신이 새 주인을 찾아내기 보다 주군이 새 봉신을 찾아내기가 더 쉬었던 것이다. 이런 주종관계는 위로는 국왕에서 맨 아래 한낱 기사에 이르기까지 몇겹으로 중첩되어 있어 이른바 봉건제의 피라미드를 형성하고 있었다.
봉건제의 또 하나의 특징은 비록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 형태로 체제를 이루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허약한 왕권 아래 통제되지 않은 지방적 조직이었다. 국왕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의 권력은 강력하지 못했고, 국왕 자신이 하나의 봉건 영주였다. 모든 봉신 그러니까 모든 기사에게는 봉토가 있었는데 그는 자기의 봉토 안에서 자신이 하나의 영주로서 배타적이고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였다. 즉 자기 영지 안에서 징세, 치안유지, 재판 등을 관장하<<font color=aaaaff>..</font>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