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학과 사상의 이해
- 최초 등록일
- 2012.12.01
- 최종 저작일
- 2012.10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제자의 학과 사상의 이해에 대한 발제문입니다.
A받았습니다.
목차
머리말
Ⅰ.사학의 성립과 그 논증법
Ⅱ.인간의 발견과 그 한계
Ⅲ. 사인의 학과 그 논리
Ⅳ. 통일과 전쟁의 논리
맺음말
본문내용
머리말
중국역사상 대전환의 시대마다 새로운 사상운동이 전개되었다. 춘추전국시대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이 시대 사상운동을 전개하였던 지식인층은 제자백가로 알려진 일군의 학인들이였다. 이들은 최초로 체계적인 지적운동을 하였다. 이것은 중국 최초로 본격적인 학(學)을 성립시켰고, 이후 중국사상의 기본적인 내용과 골격을 제시한 것이었다.
제자사상의 이해는 선진 제자서로 알려진 일련의 문헌을 통해서 접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제자서는 전체내용은 물론 어떤 특정문제나 주제도 체계적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고, 많은 경우 편장의 구분도 그 의미가 애매하였다.
< 중 략 >
Ⅲ. 사인의 학과 그 논리
제자학은 변화하는 시대에 새로운 원리를 모색한 사상운동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제자 및 그 문인들은 단순히 그 원리를 제시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직접 정치에 참여하여 그들이 발견하였다고 믿는 원리로써 현실의 위기를 타개하려고 했었다.
제자 학의 유파를 분류, 각 유파의 장단점을 논한 한 초의 사마담의 평가와 마찬가지로 제자학은 정치참여를 욕구 하는 사인들이 자신의 자질을 배양하고 아울러 그들의 정치․사회적 역할을 정립하려는 ‘사인의 학’으로 발전하였던 것이다. 때문에 정치․윤리학에 관심이 집중되었지만, 이것은 동시에 ‘치자의 학’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치자의 학’은 사인의 속성상 이중성 또는 양면성을 띨 수밖에 없었다. 사인은 일반민에 대해서는 일단 치자의 입장이다. 때문에 그들은 우선 자신이 치자로서 참여하는 지배․피지배의 정치․사회적 구조의 정당성을 역설하지 않을 수 없고, 특히 그 구조의 상징인 군주의 존재의미를 강조하였다.
춘추시대까지 천자나 제후의 통치를 분장한 것은 대체로 세습적인 봉건귀족과 그 일족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은 사인층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우선 일체의 관직세습이나 군주의 일족이나 총신이란 이유로 임관되는 것을 반대하였고, 정치를 담당할 수 있는 현능만이 임관의 유일한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정치나 행정 역시 그 자체의 고유 기능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참고 자료
중국고대사관련자료
중국사상관련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