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제국의 정치와 제도
- 최초 등록일
- 2012.07.08
- 최종 저작일
-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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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비잔틴제국의 정치와 제도에 대해 분석한 글입니다.
목차
1. 비잔틴제국의 정치
2. 비잔틴제국의 제도
3. 참고문헌
본문내용
일부 역사가들은 비잔틴제국의 뿌리를 디오클레티아누스시대로까지 올려 잡기도 하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로마 제국의 수도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진 330년을 시작으로 보기도 하고 최초의 비잔틴 황제를 제노(Zeno, 재위 474~491)로 보아 474년 이후를 비잔틴제국이라 부르는 경우가 있으나 진정한 의미의 비잔틴 문화의 특색이 나타난 것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였으며 이후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팔라이올로구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가 퇴위한 1453년까지 중세 그리스의 동로마 문화권을 의미한다.
비잔틴제국의 역사는 성상(聖像) 파괴문제를 중심으로 크게 양분될 수 있으나 일반사의 관점에서 유스티니아누스 시대부터 8세기 초까지 정치와 군사조직을 정비하고 경제적 기반을 확립하여 제국의 영토를 화대한 제1기, 8세기 초부터 11세기 중반까지 비잔틴의 최전성기인 제2기, 11세기 중반부터 15세기 중반까지 제국이 쇠퇴하기 시작하여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는 제3기로 3분된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Justinianus Ⅰ, 재위 527~565)는 라지카에서 아라비아 사막까지, 북으로는 크림 반도의 훈족에게 군대를 파견해 승리를 거두었고 도나우 강을 국경으로 삼았으며 로마와 화해하고 이탈리아를 게르만인 왕보다도 그리스도교 황제의 통치하에 두고자 했다. 하지만 황제의 장엄한 계획은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과 지나친 희생을 요구했기 때문에 532년 1월에 ‘니카(Nika)의 반란’이 일어났고 황제는 반란을 진압하면서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완성하였으며 징세정책을 개혁하고 관리의 부패를 방지하여 행정효율을 향상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군주권을 중앙집권화하기 위해 행정제도의 대부분을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관할 하에 두었으며 성 소피아 성당의 건설을 완성시켰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벨리사리우스(Belisarius, 505~565), 나르세스(Narses, 478~573) 등 유능한 장군을 파견하여 아프리카의 반달 왕국, 이탈리아의 동고트 왕국, 스페인의 서고트 왕국 등을 정복하였다. 그는 동방과 서방에서 동시에 전쟁을 하는 위험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 해마다 조공을 납부하는 굴욕마저 감수하면서 532년에 페르시아와 ‘영구적 평화조약’을 체결하였으며 그 결과 비잔틴제국은 옛 로마제국의 거의 반에 해당하는 넓이로 팽창하였다.
참고 자료
차하순.「서양사 총론1」. 탐구당,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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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태니커 세계 대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97. “비잔틴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