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청동기미술] 상주시대 청동기미술의 특징
- 최초 등록일
- 2002.11.25
- 최종 저작일
- 2002.11
- 1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중국미술사 중에서도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상주시대 미술에 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Ⅱ-I. 상왕조시대 청동기미술의 특색
Ⅱ-I-I. 상대 제사용 청동기
Ⅱ-Ⅱ. 주왕조 대두
Ⅱ-Ⅱ-I. 주시대 제사용 청동기
Ⅲ. 상주시대 청동기 미술 특징 비교
Ⅲ-I. 동물화-상상력의 발휘
Ⅲ-Ⅱ. 인물화
Ⅳ. 결 론
본문내용
기원전 1500년경까지 청동기 문화는 중국의 북부, 중부, 동부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으로 전파되었는데, 이러한 안양 이전 단계를 보여주는 대규모의 유적지가 정주에서 발견되었다. 정주의 최하층은 전형적인 욕산 신석기 문화층이지만 다음 단계인 이리강의 하층부와 상층부는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영묘로 추정되는 건물지와 가옥, 청동기 주조소, 토기 가마, 골각기 공방 등의 유구와 함께 사방 1마일이 넘고 기적의 폭이 약 18m에 이르는 도시 성벽의 잔해가 드러났다. 거대한 분묘속에는 청동 제기, 옥, 상아 등이 부장되어 있었는데, 유약을 칠한 석기와 안양에서 처음 발견된 것과 같은 양질의 백도가 발견되었다. 증명할 방법은 없으나,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정주가 상나라의 초기 도읍지 - 비록 어느 한곳도 명확하게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 가운데 한 곳이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다. 양가강 유역의 호북성 황피현 반룡성 유적지도 상대 문명의 동일한 단계에 속한다. 1974년 이 곳에서 커다란 궁궐터와 다량의 부장품이 매장된 무덤들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서 귀족적인 삼족 제기인 정의 출토되었다. 궁궐터로 추정되는 이 건물지가 상대의 봉건 영주나 지방의 제후, 혹은 독립된 통치자가 거주하던 유적지였는지의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청동기 일부에 명문이 새겨져 있지만 이에 관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