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의 유교
- 최초 등록일
- 2012.03.07
- 최종 저작일
- 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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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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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주자성리학(朱子性理學)의 수용
2. 천명사상(天命思想)
3. 민본사상(民本思想)
4. 정치사회론(政治社會論)
본문내용
1. 주자성리학(朱子性理學)의 수용
1)주자성리학 : 송대 사대부의 학문
# 송의 사대부 : 과거제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성장한 지배계층.
# 성리학은 사대부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논리가 되었다.
→ ‘성즉리’(性卽理) 사상 : 만물의 근원성과 이법이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
# 이와 같은 성리학의 사상은 인간의 평등을 전제한다. ‘천민’(天民)사상
- 위민론(爲民論)에서 더 나아가 민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긍정하였다.
- 민에 대한 지배층의 배려(예를 들면, 재생산기반 확보)는 성리학을 통해 더욱 강조되었다.
: 지배층이 위민정신에 입각해 은덕을 베푼 것이 아니라 민 스스로의 요구를 지배층인 사대부가 어느 정도 수용한 것이다.
2) 고려의 성리학 수용
# 원은 주변국가의 지배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리학을 주변국으로 전파했다
# 불교는 민의 저항의 논리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고려의 지배층은 충(忠)?효(孝)?예(禮)를 중시하는 유교사상을 철저히 이용하였다..
# 성리학은 주로 중소재지(中小在地)지주적 기반을 가진 계층에서 수용함.
# 성리학을 수용한 이들은 불교와 연결된 보수귀족층(대토지소유)을 비판하였다.1)
- 주자의 권농문(勸農文)을 통해 지주와 전호의 의무관계를 규정하여 지주적 토지지배관계를 유지, 강화하려 하였다.
# 이런 의미에서 불교와의 투쟁은 사상적인 투쟁일 뿐 아니라 정치사회적인 투쟁이기도 하다.
# 고려는 처음부터 완벽한 주자학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ex) 안향(安珦)이 주자의 화상에 절함, 유자들이 주자의 일언일구를 무조건적으로 암송함.
# 고려 후기에 들어가면서 주자학의 본의를 이해하게 되고 그것이 현실정치론에 반영되었다.
- 주자학의 핵심인 사서(四書 :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이 과거과목으로 채택되었고(1344년),
1367년(공민왕 16년)에는 성균관 과목으로 채택되었다.
3) 고려가 수용한 주자학 : 원의 주자학
참고 자료
강만길 외. 『한국사』5 : 중세사회의 성립. 서울 : 한길사, 1994.
인터넷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http://www.britannica.co.kr